지하철 시각장애인 이동 지원 ‘법따로, 현실 따로’
지하철 시각장애인 이동 지원 ‘법따로, 현실 따로’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2.04.2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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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 표시 24~45% 불과 항목 '수두룩'…이용 만족도, 시각장애인 ‘최저’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같은 맥락에서, 지하철 이용 교통약자 중 시각장애인의 이용 만족도가 가장 낮다. 국토교통부 ‘2020 교통약자이동편의시설 현황’ 자료의 ‘주 이용 도시철도역과 도시철도 전반적 만족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의 만족도가 75.0%로 가장 높고 고령자(72.5%), 지체장애인(72.0%), 임산부(62.6%)에 이어 시각장애인의 만족도가 57.9%로 가장 낮은 것이다.

한림대 미디어스쿨 <한림미디어랩>은 시각장애인들의 만족도가 가장 낮은 지하철의 장애인 이동지원 시설을 점검해봤다. 현행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 따르면 도시철도역사 내에는 점자를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하는 곳이 있는데, △손잡이 점자 표시는 경사로, 복도, 계단, 에스컬레이터에 의무적으로 돼 있어야 하고 △벽면 점자 표시는 실내 출입문 벽면, 화장실에 돼 있어야 한다. 이밖에 승강기와 자동 판매기, 발매기 등에도 점자 표지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의 존재 자체가 무색할 정도다. ‘2020 교통약자 이동편의 시설 현황’에 따르면 벽면 점자가 기준에 적합하게 표시된 곳은 전국 9개도 258개 도시철도 역사의 24.3%에 불과했다. 기준에 적합한 시설 설치율이 70% 미만인 항목만 놓고 보면 가장 잘 돼 있는 항목이 경사로 손잡이 68.4%이고, 복도 손잡이(43.1%), 에스컬레이터 손잡이(45.1%) 등은 40% 대를 넘어서지 못한다. 

손잡이 점자 표지판은 시각장애인에게 위치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점자 편의시설로 계단, 에스컬레이터, 경사로, 복도의 손잡이에 점자가 표기된 표지판을 설치하여 진행 방향과, 층수, 목적지 정보가 제공되지 않으면 시각장애인의 이동이 어렵다. 문제는 일반인은 이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 정한 설치 기준에 훨씬 못미치는 장애인 이동지원시설의 미흡한 실태에도 무감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벽면 점자 표지판은 일반 표지판 정보에 준하여 해당 실내 공간에 관한 정보를 점자로 제공하며, 장애인 등이 이용 가능한 화장실은 남녀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점자 표지판을 설치해야 한다. 승강기 점자 표지판은 시각장애인에게 승강기 조작 버튼 정보를 알려줄 수 있도록 승강기 호출 버튼과 조작반에 점자를 표기하여 상하, 층수, 개폐, 호출 등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 모든 시설들이 법으로 정해져 있음에도 절반도 설치가 안 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시각장애인 이모(26)씨는 "지하철 역사에서 친척집을 가기 위해 이동하다 에스컬레이터 수평 고정 손잡이에 점자 표시가 없어 진입하는 에스컬레이터인지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인지 몰라 순간 방향을 헷갈렸고,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다"며 당시 아찔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 뿐만이 아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에 따르면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들은 점자 표시 부족으로 인해 혼자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역사 내 이동에서 불편할 뿐 아니라 열차를 타고 나서도 그 불편함은 가시지 않는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강원도지부 김모(36)씨는 "음성안내가 있긴 있지만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시끄러울 땐 역 이름이 잘 들리지도 않는다"며, "열차 안 의자에 내가 탄 지하철칸의 번호를 점자로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래야 하차 후 이동 방향에 대해 정보를 더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9개 道(도) 지역 교통수단‧여객시설‧보행환경의 교통약자이동편의시설에 대해 1년마다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국토부와 교통안전공단은 실태조사만 하고, 관리감독은 지자체나 운영기관별로 이원화돼 있는 상황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시 등 지원시설의 설치, 관리가 미흡한 현실을 개선할 정책 의지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시각장애인이 지하철에서 점자 안내표시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강유진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데이터저널리즘> 수업의 결과물로 4월 15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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