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스며들다] 아름다웠던 갯벌 이야기… ‘수라’
[영화로 스며들다] 아름다웠던 갯벌 이야기… ‘수라’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4.03.0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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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영화(영화 '수라'의 한 장면.)
출처 : 네이버 영화(영화 '수라'의 한 장면.)

‘새만금’을 알게 된 건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개최될 때였다. 폭염특보가 발효되고 야외활동을 중단하라는 재난문자가 쏟아지던 때, 새만금에서는 잼버리대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폭염과 더불어 질퍽대는 잼버리 부지와 곳곳의 물웅덩이는 잼버리대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을 울상짓게 했다. 해당 사태와 함께 새만금간척사업의 본질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필자는 그들의 텐트가 쳐진 땅 아래 수많은 죽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영화 <수라>를 통해 알게 됐다.

비단에 새긴 수, ‘수라’
다큐멘터리 영화인 <수라>는 새만금간척사업 이후 남아있는 마지막 갯벌 '수라'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이 겪어야 했던 슬픔, 아픔을 풀어냄과 동시에 습지를 지키려는 마을 주민들과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의 입을 빌려 새만금 갯벌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다양한 생명이 오고 가며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이를 향유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아름다움을 본 것도 죄가 될까요?
영화 속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활동가는 20년 넘게 수라 갯벌의 생태계를 기록하고 있다. 조사하면서 습지에서 사라져가는 새의 개체 수를 세며 끊임없이 수라 갯벌의 보존 가치를 증명한다. 그가 기억하는 갯벌은 찬란하고 풍성하다. 아름다웠던 갯벌과 그에 기대어 사는 생명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그 미소에는 황홀함이 서려 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세계를 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아름다움을 본 것도 죄가 될까요?”

그가 느낀 죄책감은 필자가 환경보호를 실천하며 느낀 죄책감과는 다른 것이었다. <수라>를 통해 그동안 느꼈던 것은 대상 없는 죄책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죄책감을 느꼈다는 것만으로 필자가 지은 죄가 해소되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들이 느낀 죄책감에는 책임이 잇따른다. 아름다움을 봤기 때문에 이것들의 사라짐과 유지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내겠다는 책임 말이다.

앞으로의 수라
‘수라’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새들은 이곳을 포기하지 않았고, 새만금을 지키려는 이들도 이곳을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정부가 수라 갯벌에 신공항을 짓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신공항 설립을 막기 위해 생태조사단과 환경·시민단체들은 갯벌에 남아있는 멸종위기 종을 조사하며 갯벌의 생명력과 가치를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갯벌이라는 이름을 놓지 않으면, 언젠가 갯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들은 갯벌로 향한다.

머리 위로 군무를 이루며 쉬익 날아가는 수만 마리의 조그마한 도요새, 눈도 뜨지 못한 채 어미를 기다리고 있는 쇠제비갈매기 아기새, 매립공사가 진행되는 곳 바로 옆에서 알을 품고 있는 검은머리갈매기. 이 황홀경을 본 이상 수라 갯벌에 깃들어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외면할 수 없게 된다. 

세상의 변화는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닌 작고 더딘 움직임이 켜켜이 쌓이면서 일어난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방관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함께 싸워달라고, 이 아름다움을 함께 지켜나가 달라고 영화는 말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잃어버릴 것은 무엇인지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함께 ‘아름다움을 본 죄’를 나눠 갖지 않겠는가?

박서현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탐사저널리즘 캡스톤디자인> 수업의 결과물로 12월 21일 <사이드뷰>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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