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가 아닌 ‘유진’이 많은 세상을 기대한다
‘소희’가 아닌 ‘유진’이 많은 세상을 기대한다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4.01.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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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영화(다음 소희 영화에 등장하는 한 장면.)
출처 : 네이버 영화(다음 소희 영화에 등장하는 한 장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되묻지 않는 사회가 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주목할 영화가 있다. 바로 올해 2월 개봉한 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에는 우리 사회가 고민할 중요한 문제를 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전주 대기업 통신회사에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고등학생이 3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각색됐다.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설된 GUCCI IMPACT AWARD 상을 수상하며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 상은 시대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에게 주는 상으로 개봉 후 관련 법안 의결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작품성으로 인정받았다. 그 밖에도, 올해 제49회 시애틀 국제 영화제, 제4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에서 수상했다.

영화 ‘다음 소희’서 자살률을 다시금 고찰하다

졸업을 앞두고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소희. 소희는 정신적 노동이 심한 콜센터 업무를 받고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임금도, 업무 시간도 주장할 수 없는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겉으로는 대기업이라 불리는 통신사지만 통신사 위장 자회사였던 콜센터는 현장실습생인 소희에게도 꾸준한 실적을 요구했다. 

어느 날 같은 팀 소속 팀장의 자살을 목격하게 되고, 소희는 마음의 후유증을 회복하기도 전 높은 업무 강도를 강요받는다. 결국 차가운 저수지 앞에 꿈 잃은 자신의 몸을 던지며 소희의 삶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뒤이어 유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영화는 소희의 자살 사건을 유일하게 파고든 형사 유진을 통해 공허했던 소희의 삶을 다시 회상한다.

소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수직적인 사회적 구조, 가벼워진 죽음의 무게, 불합리적인 대우가 당연한 어른들. 물질 만능주의 속 살아가는 소희는 이러한 현실이 버겁기만 하고 친구 쭈니와 있어도 더 이상 해맑게 웃을 수 없다. 나아질 방법을 몰랐고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고립된 환경에서 소희는 좌절감과 상실, 그리고 우울감 어딘가에 놓이게 된다.

영화 ‘다음 소희’는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외면하고,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주인공 ‘소희’의 시점, 침묵 속에서 사라진 소희 사건을 파헤치는 유진의 시점으로 나눠져 있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지만 죽음에 이르렀던 소희는 현실, 정의감에 넘쳐 보였던 유진은 허구의 인물이다. 감독은 유진을 통해 반복 되서는 안될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인권의 ‘수치(數値)화’

작품에서 무심코 반복해 보여주는 것이 있다. 바로 통계표다. 극 중 팀장은 소희가 얼마나 실적을 올렸는지 계속 확인하며 1등과 꼴등을 대놓고 비교하기도 한다. 감독은 성과 그래프와 실적표라는 장치를 통해 숫자로 보는 사회를 그려냄으로서 존엄한 인권이 통계화 되는 순간을 연출했다.

작품 속 주인공은 노동자가 아닌 ‘현장실습생’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소희는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며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 급여로 인해 인센티브에 목매게 되는 결과를 맞이한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라도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임금을 청구할 수 있고 (「근로기준법」 제68조 및 「민법」 제4조) 근로 청소년이 받아야 할 임금을 받지 못한 경우 이 사실을 지방고용노동관서의 장 또는 근로감독관에게 신고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규제「근로기준법」 제104조, 제106조 및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59조 제13호). 이러한 법을 과연 청소년들이 스스로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무관심의 ‘벽’

이쯤에서 ‘혹시 소희에게 어른이 없었던 건 아닐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니다. 소희에게 어른은 함께 살았던 가족, 실습 관리 감독이었던 선생님, 직속 상사와 동료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사건을 파헤치던 유진은 극 중 부모에게 ‘소희가 평소 춤을 좋아한 걸 아시냐’ 질문하지만, “몰랐어요” 라는 답이 돌아온다. 무관심이 만든 벽인 셈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사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현실을 비판한 장면이라 볼 수 있다.

극 중 소희는 아직 미성년자다. 사회에 녹아들기엔 시간과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나이인 것이다. 감독은 취약함을 도구 삼아 회사 사정에 따라 법 규정을 나쁘게 활용한 현실을 꼬집었다.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기분 나쁜 텁텁함을 느끼게 했던 장면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렇게 현장실습생들의 처지를 취약하게 만들었을까. 왜 이런 구조가 되었을까.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사람이 없어.”

국가인권위원회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개선 방안 마련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장실습을 하다 재해를 당한 사건이 2016년 4건에서 2020년 16건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실습생의 재해뿐만 아니라, 사망사고까지 이어졌으나 이는 통계 자료에 누락 되어 있어 과소 집계한 것으로 보여진다. 작품에서 불합리적인 제도에 화가 난 유진이 결국 교육부를 찾지만 “이제 그만하시죠”라는 암담한 대답을 듣는 장면과 비슷한 모습이다. 영화 속 현실과 실제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드러내 배우와 관객까지도 허탈함을 느끼게 했다.

사실은 ‘우리의 이야기’인 영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합리적인 것, 부당한 것에 익숙하게 살아간다. 작품을 통해 필자도 별반 다르지 않게 순응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와 영화, 각종 매체에서 나오는 꽉 닫힌 해피엔딩에 익숙했기 때문일까. 소희의 죽음이 더욱 답답했던 이유기도 하다. 영화는 우리 스스로를 위해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는 숙제를 남겼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형사 유진처럼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로 여기고 “그럴 수밖에 없어”라는 말 대신 그렇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어른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대운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탐사저널리즘 캡스톤디자인> 수업의 결과물로 9월 22일 <사이드뷰>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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