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비 먹튀 후 인근에 병원 재오픈... 억장 무너진 피해자들
치료비 먹튀 후 인근에 병원 재오픈... 억장 무너진 피해자들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3.12.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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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피부과 장기 치료 환자들 피해 속출... 지난 1~2월 피해신고 91.9% 증가
사진=지난 7월 17일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의료사기 피해자 김현석(45·사진 오른쪽)씨가 딸의 치아 교정치료를 받기 위해 찾은 치과 병원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지난 7월 17일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의료사기 피해자 김현석(45·사진 오른쪽)씨가 딸의 치아 교정치료를 받기 위해 찾은 치과 병원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7월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만난 김현석(45)씨는 "잠이 안 올 정도로 화가 났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초등학생 딸이 교정치료를 받아오던 병원이 미리 고지도 없이 문을 닫고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맘카페를 통해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A 병원을 찾아간 현석씨는 "다른 병원과 비교했을 때 2/3 가격 수준"이라는 말에 홀린 듯 300만 원을 선납하고 딸의 교정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치료 한 달만에 병원이 문을 닫고 의료진이 돌연 종적을 감춰 치료는 중단됐다.

연락이 되지 않아 여러 차례 병원을 찾았지만 닫힌 문은 그대로였고, 결국 치료비는 돌려받지 못한 채 딸은 다른 병원에서 새로 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의료인이니까 믿고 사인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린 현석씨는 병원이 없어져 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허탈해했다.

장기치료를 요하는 치과·피부과 등 진료에서 "비용 할인" 등의 이유로 수백만원대 비용을 전액 선결제 한 뒤 치료 도중 병원이 문을 닫고 사라지는 등 의료 사기 피해가 늘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서울 역삼동의 B 피부과 의원은 지난해 8월 "병원 내부 리모델링을 이유로 휴진 예정"이라고 이용자들에게 안내했다. 그러나 휴진 기간이 끝난 뒤 병원에 방문한 환자들은 건물 관리인을 통해 "병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사전 안내도 없었고, 정확히 어디로, 어떤 이름으로 옮겼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당 건물에는 이전 이후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병원의 행방을 묻는 피해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취재진이 지난 13일 해당 건물을 방문하자 건물 관리자 "병원이 하남시로 이사갔다"고 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해당 B 피부과의 사업자번호를 찾아본 결과, 도보 10분 거리에서 비슷한 상호명으로 영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B 피부과 원장은 가까운 거리에서 병원을 운영 중임에도 기존 선납 고객들의 남은 진료는 나몰라라 하고 있었다. 몇몇 피해자에게 이메일을 통해 물어본 결과, "인근에 재개원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4월, 한국소비자원(아래 소보원)이 발표한 '의료기관의 잔여 진료비 환급 거부 및 과다 공제'에 따르면 관련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부터 2023년 2월까지 접수된 구제 신청 건수를 토대로 한 이 자료에서 올해 1~2월에만 71건이 접수돼,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91.9%(43건)나 증가했다.

전국 의료사기 피해자들이 모두 소비자원에 신고한 것이 아님을 감안한다면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돼, 보건 당국의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계약 땐 전문의, 치료 받아보니 전문의 아니다?
  
이들 의료소비자들의 피해는 '먹튀 병원'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전문의'라고 속여 계약을 유도한 뒤, 낮은 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병원과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경우, 소비자는 환불 요구도 하기 어렵다. 오히려 "업무방해"라며 경찰에 신고하는 병원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시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김아무개(27)씨는 지난 2월 강남구 신사동 소재의 C 치과에서 교정치료를 시작했다. SNS 광고를 보고 방문한 병원에서는 원장을 교정 '전문의'라고 소개했고, 2년 계획의 교정치료비를 전액 선납하면 할인을 해준다는 말에 김씨는 280만 원을 전액 현금으로 지불했다.

그러나 치료 시작 초반부터 문제가 생겼다. 교정장치는 두 달 사이 6번이나 빠져 매번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재부착해야 했다. 엑스레이나 3D스캐너 영상 촬영 등 기기조작이 미숙한 점도 마음에 걸렸다.

병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김씨는 상담을 통해 환불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원장이 치아교정에 '전문'이시라고 소개했지 '전문의'라는 말은 아니었다"며 "계약서상 환불해 줄 금액이 없다"고 거부 의사를 보였다.

2달 밖에 치료를 받지 않은 상태인데도 병원 측은 "업무방해"라며 김씨를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한 상태다.

취재진이 여러 피해자를 접촉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C 치과는 신사동에 개업하기 전인 2015년과 2021년에 이미 두 차례 이름과 위치를 바꿔가며 재개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과거 병원 이름을 검색하자 해당 병원이 유사한 수법을 반복하며 환자들의 불만을 샀다는 지적이 올라와 있다. 김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소비자들을 경찰에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진료와 환불을 거부했다는 내용들이 담겨, 김씨가 이 병원 첫 피해자가 아님을 짐작케 한다.

의료소비자 권리, 민법상으론 가능하지만 제도 보완 절실

현재 민법상 의료계약은 위임계약으로 민법 제689조 제1항과 제2항에 의거,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피해자가 의료서비스에 불만족해, 계약을 해지하면 환불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민법상 의료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해 줄 현실적 장치는 부재하다.

병원 폐업·휴업의 신고에 관한 의무사항을 규정한 의료법 제40조에 따르면 '의료기관 개설자는 의료업을 폐업 또는 휴업하는 경우' '입원 중인 환자를 다른 의료기관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등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해당 지자체는 병원 폐업 또는 휴업 신고를 받으면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 확인'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통령령으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시술 패키지 혹은 교정같이 장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의료 계약을 맺은 환자에 대한 보호조치는 전무하다. 이는 의료기관 설립이 신고제라 의료인들이 자유롭게 지역을 옮겨다니며 개·폐원을 할 수 있지만, 의료소비자들에 대한 보호는 현재 명목적으로 입원환자에만 국한돼 있음을 의미한다. '먹튀병원'의 근본 원인으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나마 소비자들이 의료사기 피해를 당할 경우 소보원 같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만, 소보원의 경우 병원과 환자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관련 법규에 의거, 양 당사자에게 합의를 권고하는 기관일 뿐이다.

민사분쟁으로 가기 전 비용없이 신속히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법원 판결과는 달리 강제력이 없다. 양 당사자 둘 중 하나라도 해당 기관의 합의안을 거부한다면 합의 절차는 시작도 되지 않고 소보원의 안은 무용지물이 된다.

C 치과에서 피해를 본 김씨의 경우, 소보원이 아닌 해당 병원이 소재한 강남구의 보건소에 피해 구제 방안을 문의했으나 "의료법으로 제재할 수 있는 사안에는 해당되지 않아 행정 기관이 별도의 조치를 할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사진=지난 7월 17일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의료사기 피해자 김현석(45·사진 오른쪽)씨가 딸의 치아 교정치료를 받기 위해 찾은 치과 병원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모(27)씨가 강남구 보건소에 피해 구제 방안에 대해 문의하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는 이메일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남은 진료비를 환불받기 위한 방법은 민사소송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대개의 피해자들은 소송 비용에 비해 피해액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소송을 진행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복잡한 민사소송의 과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소보원의 합의안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병·의원들에 대한 모니터링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들 문제 의료기관을 제재할 규제장치는 현실적으로 전무한 실정이다.

드물게 민사소송을 가더라도 의료기관들은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2018년 충남 당진에서 서울 압구정까지 올라와 교정 치료를 받으려던 이성영(33)씨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언론에도 보도됐던 이른바 '투명치과 먹튀사건'의 피해자 이씨와 연락해 당시 상황을 들어봤다.

평소 고르지 않은 치열 탓에 교정을 고민하던 이씨는 지인의 소개로 D 치과에 방문하게 됐다. 여러 유명인의 홍보와 높은 할인율 등을 고려해 차로 왕복 6시간이 걸리는 거리임에도 해당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기로 했다.

이 병원은 당일 등록 시 교정 비용 790만 원을 310만 원으로 할인해주겠다며 선납결제를 유도했고, 이씨는 큰맘 먹고 3개월 할부로 전액 결제했다. 그러나 당진에서 올라왔어도 대기자가 길어 밤샘 대기를 하는가 하면, 담당의사가 수시로 교체됐다.  치료 진행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새로운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 했고, 급기야 초기 상담 내용에 없던 임플란트 치료를 권고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씨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각종 불만은 민사 소송으로 번졌다. 피해 인원만 3000여 명에 달하는 가운데 법원은 원고 이성영씨를 비롯한 103명에 대해 진료비 전부를 K 원장이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의료사기 피해자들이 민법상의 피해구제를 받을 가능성을 내비친 판결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피해 배상 금액이 약 5억 원에 달했지만, K 원장은 간이파산 신청을 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간이파산이란 채권자에게 변제할 금액이 5억 원 미만임이 인정될 경우, 신속하게 채무자의 파산절차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 가운데 지금까지 실제로 배상을 받은 피해자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씨는 취재진과 한 전화 통화에서 "K 원장이 챙긴 교정시술비만 124억 원인데 사기 혐의 피고인이 5억 원이 없어 파산을 했다는 게 이해가지 않는다"며 억울함을 전했다.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법망을 교묘히 피해 배상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의료인에 속수무책이다.

이처럼 '먹튀' 병원은 현행법상 신고제인 의료기관을 지역을 옮겨 다니며 '신고'를 통해 자유롭게 재개원을 할 수 있고, 기존에 선납 의료계약 미이행건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한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제재가 들어오더라도 얼마든지 파산선고제도의 빈틈을 악용할 수 있는 것이다. 현행법으로 보호되는 입원환자 뿐 아니라 정기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뜻밖에 병원 폐업을 알게 되는 교정치료·시술패키지 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법규로든, 보건소 등 기관을 통해서든 마련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간판 글자 크기로 전문의 여부 알 수 있어

의료사기 피해 증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주의도 필요하다. 

2022년 C 치과에서 선납 피해 사기를 당한 김아무개(27)씨는 교정 치료를 위해 찾은 치과에서 상담 중 '교정 전문의'가 있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믿고 치료를 결심한 케이스다.

그러나 치료 과정 중 이미 치료비를 완납했음에도 추가 비용 지불 요청이 계속되고 교정 장치가 반복적으로 떨어져 이상함을 느끼고 치료 중단을 결심했다. 이후 병원을 찾아가 상담실장에게 "분명 상담에서 담당의를 '교정 전문의'라고 소개하셨는데 교정 학회에도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전문의 약력 자체가 없던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상담실장은 "교정 전문의가 아니라 교정 전문이라고 했다"고 말을 바꾸는 등 소비자 입장에서는 '황당한' 태도로 돌변했다. 

전문의 여부는 병·의원 간판을 보고도 알 수 있다. 외부 간판 표기에 관한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제40~42조에 따르면 전문의가 없는 경우 병원 명칭을 표기할 때 '(상호명)의원' 글자 크기의 1/2 크기로 진료과목을 덧붙여야 한다.

전문의가 있어야만 병원 이름과 진료과목을 '(상호명)치과의원'과 같이 같은 크기로 표기할 수 있다. 단 현행법은 병원 안의 내부 간판에 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취재진은 이런 의료법 현실을 염두에 두고 구글 설문 폼을 활용해 시민 160명을 대상으로 '병·의원 전문의 판별'에 관한 인지 여부를 알아봤다. 그 결과, '모른다'는 응답이 70%였다. 이에 반해 치과·성형외과 등 비보험 수술을 앞둔 상황을 가정하고 어떤 조건을 더 선호하는지 물어보니, "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80%에 달했다.

즉, 의료소비자들의 높은 전문의 선호도에 비해, 전문의 소재 의원 구별을 위한 비교적 간단한 요령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지난 7월 17일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의료사기 피해자 김현석(45·사진 오른쪽)씨가 딸의 치아 교정치료를 받기 위해 찾은 치과 병원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시민 160명을 대상으로 한 ‘병·의원 전문의 판별’에 관한 설문 결과다. 전문의 판별 간판의 차이에 대해 ‘모른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사진=지난 7월 17일 경기 화성의 한 카페에서 의료사기 피해자 김현석(45·사진 오른쪽)씨가 딸의 치아 교정치료를 받기 위해 찾은 치과 병원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시민 160명을 대상으로 한 ‘병·의원 전문의 판별’에 관한 설문 결과다. 비보험 수술을 앞둔 상황에서 전문의 소재 의원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80%에 달했다.

제도개선과 소비자 권리의식 향상 필요

치과, 피부과의 미고지 폐업으로 치료는커녕 고액의 의료비만 사기당하는 등 피해를 본 취재원들의 피해 유형은 조금씩 달랐으나, 취재과정에서 모두 "더 이상 같은 피해자가 없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선착순 및 기간 한정 할인 이벤트 등을 홍보하며 현장에서 즉시 계약을 유도하는 경우를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계약한 의료행위의 세부적인 금액과 구성, 공제액, 위약금 등을 꼼꼼히 확인하고, 소비자에 불리한 조항이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정·김희원·윤하은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한림미디어랩 공모전 온더로드23 B팀의 결과물로 11월 28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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