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에서 들린 노랫소리... '춘천 실버스타' 탄생 부르다
동사무소에서 들린 노랫소리... '춘천 실버스타' 탄생 부르다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3.11.2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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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소영씨 "노래 봉사로 인생의 소중함과 행복 느껴요"
춘천의 한 카페에서 기자를 만난 김소영씨가 자신의 행복한 노래 봉사 활동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춘천의 한 카페에서 기자를 만난 김소영씨가 자신의 행복한 노래 봉사 활동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제게 인생의 소중함과 행복을 알려주신 복지관 어르신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강원도 춘천에는 '춘천의 실버스타'라고 불리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70대 여성이 있다. 꾸준한 노래 봉사 덕에 가수라는 꿈에 한걸음 가까워질 수 있었다는 김소영(78)씨가 그 주인공이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던 10월 하순의 어느 날, 춘천 석사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 70대에 이룬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소영씨는 "젊었을 때는 치열하게 사느라 몰랐는데 50대가 넘어 어르신들께 노래 봉사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사는 게 참으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어요"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어 김씨는 "복지관에 노래 봉사를 하러 가면 소파에 힘없이 드러누워 있거나 멍하니 계시던 어르신들이 제가 불러드리는 트로트 한 소절에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웃어 보였다.

"어느새 장단이 잘 맞지도 않는 손뼉을 치며, 다음 소절을 따라 부르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요.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다 보니 어르신들로부터 사랑도 듬뿍 받으면서 목소리도 젊게 유지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봉사 동아리와 함께 한 달에 4번 정도 활동을 했지만, 코로나로 동아리가 해체된 후에는 개인적으로 노래 봉사를 하고 있어요. 마을 잔치에 가면 통기타를 치며 보통 1시간 동안 10곡 정도 불러요."

2002년부터 시작된 음악 봉사가 올해로 벌써 21년째에 접어들었다는 김씨는 춘천 후평동 기타교실 등에서 봉사활동 중이다

춘천의 한 카페에서 기자를 만난 김소영씨가 자신의 행복한 노래 봉사 활동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춘천의 한 카페에서 기자를 만난 김소영씨가 자신의 행복한 노래 봉사 활동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젠 입소문이 나서 동네잔치가 있을 적에는 초청 가수로 대접도 받아요. 노래 대회에 나가면 상도 받네요."

누구보다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김소영씨지만, 그녀에게도 가슴 아픈 기억은 있다. 가수로 데뷔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스무 살에 편치 않은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열여덟 살 때 문화방송(현 MBC)의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해 노래를 불렀더니 문화방송의 음악과장님이 저에게 작곡가 한 분을 소개해 주셨어요. 그 작곡가에게 곡을 받았어요.

하지만 아버지께서 강하게 반대하시는 바람에 결국 가수로 데뷔할 기회를 잃어버렸죠. 어느 날 아이 젖을 먹이는데 한 가수가 TV에서 제가 받은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어요."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에 가슴 아픈 이혼을 겪어야 했던 그녀는 세 아이를 데리고 살아남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에부터 식당에까지 이르기까지 여러 사업에 손을 댔지만, 하나같이 운이 따라주질 않았다.

그렇게 삶에 지쳐갈 무렵, 그녀에게 작은 기적이 찾아왔다.

"식당을 하던 게 결국 망해서 싼값에 처분하고, 50대 초반에 춘천 퇴계동에 방을 얻었어요. 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하러 갔더니 동사무소 위층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직원에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봤는데 '노래 교실'에서 나는 소리라는 거예요.

올라가서 살짝 구경하다가 용기를 내 등록하러 왔다고 노래 교실 선생님에게 말씀드리니 즉석에서 노래 한 곡을 불러보라고 하셨죠. 그 자리에서 노래 강사님이 수업하고 있던 곡을 바로 불렀는데, 강사님께서 내 노래를 듣더니 칭찬하시며 '혹시 노래로 봉사할 생각이 있느냐'고 권유해 왔어요. 그때부터 얼떨결에 노래 봉사를 시작했답니다."

춘천의 한 카페에서 기자를 만난 김소영씨가 자신의 행복한 노래 봉사 활동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올해 춘천시에서 개최한 주민자치 우수 프로그램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김소영씨(오른쪽)가 당시 무대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다.(김소영씨 제공)

김씨는 노래 봉사를 위해 방문한 복지관에서 '노래 교육 봉사'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노래 교육'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니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정원이 꽉꽉 찼어요. 제대로 노래 교육을 하고 싶어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들의 노래 교육 영상을 찾아보고, 악보도 직접 뽑으려고 프린트기까지 장만했어요. (웃음). 그런 열정을 알아주셨는지 수업을 받는 분들이 무척 좋아해 주셔서 새로운 보람을 느꼈습니다."

김소영씨에게 봉사란 어떤 의미일까? 이에 대해 그녀는 "내 재능을 남한테 베풀고 나눠줄 수 있는 보람되고 행복한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내가 참 잘살고 있구나'라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니 봉사가 되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런 김씨 뒤에는 든든한 남편이 있다. 김소영씨는 "15년 전 노래 교실에 나오던 한 사모님이 지금의 남편을 소개해 줬어요. 저는 상당히 외향적인데 남편은 점잖고 성품이 고와요. 남편 잘 만나서 행복한 인생이 더욱 행복해지고 있어요"라며 애정을 표현했다.

이어 "처음에는 노래 봉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남편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제 길을 응원해 줍니다"라며 뿌듯해했다. 김씨의 음악 봉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녀는 수줍게 자신의 희망을 살짝 털어놓았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목소리를 더욱 잘 갈고 닦아서 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나눠주고 싶어요. 목소리가 나오는 한, 체력이 닿는 한 계속 노래 봉사를 하며 행복하게 살고자 해요."

마지막으로 과거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김소영씨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잖아요? 안 해 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부딪히며 거칠게 살았는데 그랬기에 오늘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소영아, 그동안 참으로 열심히 잘 살았다'는 말해주고 싶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함의찬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인터뷰실습> 수업의 결과물로 11월 21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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