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춘천박물관은 지난 5월 25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국보 124호인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을 새로운 전시 공간에서 공개했다.
새 전시실은 어두운 실내에 지속적으로 각도가 변하는 조명을 설치해 보살상의 입체적인 흰 대리석 재질을 다채로운 각도로 보여준다. 또 작곡가 카입(Kayip)의 곡에 파도·비·눈·풀벌레 등의 소리를 입혀 보살상이 최초로 발견됐던 한송사 터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이처럼 새 전시공간에 모습을 드러낸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의 미소에는 일제 강점기에 한 폐사한 절터에서 발견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지금의 전시 공간에 자리를 잡기까지 기구했던 역사가 숨어 있다.
흰 대리석으로 만든 고려시대 석조 불상인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19세기 중반에 한송사가 폐사하고 같은 이름의 보물 81호 불상과 함께 절터에 방치됐다. 이후 두 불상은 조선총독부관측소 소장인 와다 유지(和田 雄治, 1859~1918)에 발견돼, '다라보살'이라는 이름으로 1912년에 도쿄제실박물관에 안치됐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다라보살을 섬기는 다라신앙은 사실상, 인도·티베트·일본을 제외하면, 동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유행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한국은 현재까지도 다라보살과 관련된 기록이나 유물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기에, 이 보살상이 일제 강점기 때 '다라보살'이라 불린 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이들 한송사의 불상이 언급된 사료에서는 '문수'와 '보현'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고려시대의 불상이 일본인에 의해 도쿄로 건너가면서 잘못된 이름으로 반세기를 보내야 했지만 1965년 한일 기본조약에 의해, 55년만인 1966년에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이듬해인 1967년 국보 제 124호로 지정됐다. 해방 이후까지 따라다니던 다라보살이라는 이름 대신 본래의 '보살 신분'을 되찾은 것이다.
본래의 정체성을 되찾은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그 자체로 보면, 고려시대 다수의 거대하고 투박한 불상들과 달리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 불상처럼 정교하고 세밀한 것이 특징이다.
같은 고려시대 불상인 신복사지 석불좌상, 월정사지 석조보살좌상도 비슷한 특징을 가져, 학자들은 고려시대 인근 인근 지역에서 유행하던 사조의 발현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부처의 이마 사이에 난 흰 털을 의미하는 '백호(白毫)' 부분이 훼손된 것과 부서진 목 부분을 다시 붙힌 흔적 외에는 보존 상태가 훌륭한 문화재로 알려져 있다.
또 장신구·옷 주름·손과 같은 세밀한 부분을 입체적으로 표현, 뛰어난 고려시대의 공예 실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불상을 일본으로 가져갔던 와다 유지도 자신의 논문인 <江原道發見の白玉佛(강원도 발견의 백옥불)>에서 "또 다른 곳이 결손을 입었다고 해도 흉부의 장식과 옷주름 등을 보면 비범한 걸작"이라며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을 극찬한 바 있다.
한편 국립춘천박물관은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외에도 '창령사 터에서 발견한 오백나한'을 2층 브랜드실에 전시중인 것은 물론 기획특별전 오대산 월정사 전을 마련, 강원도의 불교 문화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민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로컬뉴스공급 캡스톤디자인> 수업의 결과물로 6월 7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