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선 시대 조창 ‘흥원창’ 복원
고려·조선 시대 조창 ‘흥원창’ 복원
  • 심민현 기자
  • 승인 2015.05.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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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2020년까지...단종유배길도 되살려

흥원창의 표지석.

남한강과 섬강 합수부에 위치한 고려·조선 시대의 물류 중심지 ‘흥원창’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원주시는 흥원창을 복원하고 관광지로 조성해 원주를 관광 1번지로 만들고자 ‘흥원창 합수머리 복원사업’ 기본계획 용역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흥원창 복원과 체류형 관광객을 위한 한옥 체험 시설과 평저선, 나루터, 민속장터, 역사문화거리 등이 오는 2020년까지 조성된다.

흥원창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비운의 왕인 조선 제 6대 단종 대왕의 유배길 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복원 프로젝트에는 ‘단종 유배길’ 복원 사업도 포함되었는데 원주시 부론면 흥원창에서 영월군 솔치고개까지 77km 구간을 역사문화 탐방로로 조성한다.

흥원창 뱃길 모습.

흥원창의 역사.

 

흥원창은 강원 지역의 세곡을 보관하고 한강 수로를 이용해 도성으로 운반하는 조창이었다. 충주에서 서북으로 흐르는 한강의 본류와 원주를 지나 서남으로 흐르는 섬강이 합류되는 언덕배기에 위치해있다.

 

옛날부터 이 지역은 풍요로운 곳이었다. 자연환경이 좋아 물산이 풍부했고, 육로와 수로가 발달돼 있어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그런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치열한 각축전을 펼치기도 했으며, 고려 왕조 창업의 시발점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의 치열한 전투 현장이 되기도 했다.

 

흥원창하면 단종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아버지 문종의 이른 죽음으로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단종은 3년도 채 안되어 권력에 눈먼 삼촌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를 떠나게 되는데 흥원창은 단종의 슬픈 유배길 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라는 말이 있다. 세조는 자신의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해 죽을 때까지 절대 권력을 누리며 왕조실록에도 자신이 왕위를 빼앗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구질구질한 이유를 대며 정당화 시키고 있다. 분명 그 시대의 승자는 세조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단종의 슬픈 유배길인 흥원창을 걸으며 단종의 슬픔을 공유해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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