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학 기자칼럼] 외로움은 사회적 질병이다
[사회의학 기자칼럼] 외로움은 사회적 질병이다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19.10.0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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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부 장관’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아마도 생소한 말일 것이다.

지난해 1월 영국 총리 테레사 메이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으로 트레이시 크라우치를 임명했다. 외로움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사회적 질병’으로 보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 부처 장관 탄생 직전인 2017년 12월에 영국의 ‘외로움 위원회‘는 “외로움이 영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영국인 900만 명이 외로움을 앓고 있고, 이는 담배보다 더 건강에 치명적이다.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국가들과 호주, 미국 등 서방세계에서는 외로움을 사회적 질병으로 보고 발 빠른 대책을 세워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한국리서치에서 지난해 4월18~20일 만 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영국처럼 우리 정부도 나서야 할까”라는 질문을 해보니 ‘필요하다’라고 응답한 의견은 40%인 반면 ‘아니다’라고 응답한 의견은 46%에 달했다. 아직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반면 ‘외로움을 얼마나 느끼나’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7%가 최근 한 달간 ‘거의 항상’ 느꼈다고 응답하였고, 19%는 ‘자주’ 느끼고 있다고 응답해 4명 중 1명은 외로움을 자주 혹은 더 많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1%는 ‘가끔’이라고 응답했고 ‘못 느낌’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1%에 불과했다.

왜 우리 사회에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윤현숙 교수는“외로움은 사회로부터의 고립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가족, 친구, 지역사회 등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심한 우울증, 치매 등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자살로까지도 이어진다”고 말했다.

사회적 고립의 심각성을 암시하는 지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2018년 1인 가구의 수는 584만 8천594명으로 1인 가구 비중이 29.3%에 달한다. 2인 가구(546만명, 27.3%), 3인 가구(420만, 21.0%), 4인 가구(339만명, 17%)보다 많은 것이다.

이처럼 ‘홀로 살기’가 한국인의 가장 두드러진 주거형태로 자리잡은 가운데 아무도 돌보지 않은 채 홀로 돌아가는 ‘무연고 사망’도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시신의 양도가 포기된 무연고 사망자 수가 2013년 1천271명에서 지난해 2천549명으로 배가 넘게증가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2013년부터 지난 5년간 누적 무연고 사망자수를 보면 시니어(1천512명)보다 40-50대인 중장년층(2천98명)이 더 무연고 사망이 많다는 사실이다.

홀로 사는 사회에서 청년도 외로움을 느끼며 살지만 이유는 좀 다르다. 한국리서치가 ‘청년들이 고독감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 ‘더욱 치열해진 무한 경쟁 시대’가 44.8%로 1위를 차지했고 ‘사회 양극화 현상’이 35.4%, ‘높아진 취업 문턱’이 33.6%로 뒤를 이었다. 이렇듯 외로움은 애인, 가족, 친구가 없어서만이 외로운 것이 아니다.

한국의 시니어도 외롭다. 윤교수에 따르면 “독거 노인 비율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중간 정도이지만 노인 빈곤율이 높기도 하고 오랜 시간 가족은 물론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된 탓”에 지난 2015년부터 현재까지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다.

그렇다면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일까. 외로움을 일찌감치 사회적 문제로 규정한 영국의 해답을 참고할만하다. 영국은 비영리조직 ‘맨스 셰드(Men’s Shed )’라는 공동체 모임이 있다. 참가자들은 셰드(헛간)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계단, 화분을 만드는 공동체 활동을 하며 참가자들 대부분이 소속감과,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영국은 총 500개 이상의 맨스 셰드가 운영되고 있다. 각각의 맨스 셰드가 1년에 세 명의 자살을 막을 만큼 자살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는 분석도 나왔다.

또한 영국에는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그레이트 겟 투게더(Great Get Together)’라는 행사를 진행한다. 3일간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길거리에 나와 파티를 열고 식사를 하는 축제이다. 축제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부산 시의회에서 ‘부산시민 외로움 치유와 행복 증진을 위한 조례안’이 재적의원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한림대학교 윤 교수는 “최근 사회복지의 방향이 지역사회가 돌보는 ‘community care’를 장려하고 있고, 지역주민들과 병원 복지시설 등 지역 소재 기관들이 서로 돌보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외로움에 대해 정책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국내외 불문하고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 조지아 대학 노인학연구소의 커스틴 거스트 에머슨 교수는 "공중 보건을 논할 때 흡연과 비만은 항상 우려하지만 사회적 고립이나 외로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분명히 실제 하는 끔찍한 결과를 낳는 것이 외로움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덜 건강하고, 우리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마음의 병이라는 외로움. 그것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의 심적 고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사회질병’이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빈곤은 외로움과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이라는 테레사 수녀의 말을 정부와 지역공동체가 귀담아 듣고 이 질병을 치유할 프로그램들을 개발해가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황유찬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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