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세전환의 시대
태세전환의 시대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19.07.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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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국제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근 40년간 지속된 소위 세계화라는 이름의 신자유주의를 뒷받침해주던 자유무역체제가 흔들리는 중이다. 그것도 그 체제에서 가장 이득을 본 세력들에 의해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보호무역전쟁이 그렇고,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라는 도발 또한 그렇다. 특히 일본의 몽니는 G20이 폐막된 직후에 일어난 일이라 더욱 황당하기 그지없다. G20 의장국으로서 자유무역의 기치를 만천하에 표방하고 나서고선 뒤통수를 쳤다. 자국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전격적으로 발표된 무역제재는 가히 세계 경제 및 안보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뇌관이 되기에 충분하다. 

사실 신자유주의체제가 세계인류에 공헌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된 것들이 있었다. 이미 거짓으로 판명된 지 오래인 ‘다국적 기업과 금융자본이 어용 경제학자들을 동원해 선전하던 낙수효과’는 차치해 두자. 진짜 기대치가 컸던 것은 금융자본의 네트워크화로 경제적으로 개방된 세계화가 어느 한쪽의 붕괴를 방치하게 되면 도미노처럼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세력 간 큰 충돌을 방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믿음은 구 냉전질서에서 인류가 일상으로 상상하던 전쟁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역시 역사적으로 허구임이 드러났다. 

바그다드와 같은 문명화된 도시를 폭격으로 초토화시킨 후 리셋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다국적 금융자본을 투입, 이윤을 창출하는 이른바 ‘재난 상황을 유발한 재건경제’라는 의혹을 받는 걸프전 또한 비근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침공을 감행하고 나선 후 임기를 마칠 때쯤 돼서야 이라크에서 화학무기 공장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 이외에는 딱히 책임지는 이도 없어 보인다. 난센스도 이런 난센스는 없다. 가히 가공할만한 핵폭탄급의 거짓과 부조리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금융위기 또한 아시아의 떠오르는 4마리용이라는 신흥개발도상국들에 대한 견제를 위해 기획된 것이라는 의혹은 이미 의혹 수준이 아니다. IMF를 동원한 선진금융 자본의 기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거리로 거처를 옮겨야 했고 빚으로 압박받던 소시민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보여준 중소기업 사장들의 생존기가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 싶다. 극 중에서는 미 재무부 차관이 은밀히 입국해 이러한 사태를 뒤에서 조정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로써 그때를 회상하며 영화에 몰입한 중년 관객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도 했다.

일본이 벌인 작금의 사태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모략을 간파했다면 우리는 이번 일을 태세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1970년대 당시 세계적인 데탕트의 물결과 괴리된 분단된 한반도에 전환시대에 맞는 새로운 논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故 이영희 선생의 혜안을 원용해 더 이상 선진국(先進國)이 아닌 선점국(先占國)들이 재편하려 드는 다른 의미의 전환 시대에 맞춰 태세를 갖추고 대응해야 할 시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을 깔아뭉개고 주저앉히려는 것이 일본의 본색인 이상, 우리를 영원히 종속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비열한 획책에 단호히 응전해야 한다. 그리고 인식의 전환은 실천의 영역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제 ‘태세전환의 시대’에 싸워야 할 이유가 분명하게 보인다.

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 아시아투데이 7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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