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호미, 디자인 관점에서 보다
K-호미, 디자인 관점에서 보다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19.04.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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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경북 영주의 작은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가 입소문을 타고 미국과 호주로 팔려나간다는 기사를 접했다. 전문 온라인쇼핑몰 아마존닷컴을 통해 유통된 호미의 수가 지난 삼 개월간 수천 개가 넘었다고 한다. 손으로 직접 두드려 제작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어림잡아 하루 생산 가능한 최대치이지 아닐까 싶다. 출근길에 즐겨듣는 라디오 방송에서 전화 인터뷰를 하는 호미장인에 대한 인상은, 그가 장인이라기보다는 시골의 소박한 농투성이처럼 다가왔다.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이해도 없어 보였고, 주변에 마케팅전문가나 경영에 대한 조력자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열네 살부터 대장간에서 손이 곱아가며 50년 세월을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끝에 도둑처럼 찾아온 행복감이 그의 말에 묻어나왔다. 

홍보 효과의 발단은 ‘유튜브’였다. 미국의 한 유튜버가 한국산 호미를 정원 가꾸기에 최적화된 ‘새로운 도시형 농기구’로 소개하면서부터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직구를 희망하는 해외소비자가 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느 철물점에서 개당 2000원에 판매되는 호미가 현재 아마존닷컴에서 스무 배가 넘는 36달러에 거래된다고 하니,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하자면 지금 이 시점에도 미국이나 호주 어디선가 주문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간의 K-호미, 혹은 ‘호미의 한류’라는 말이 붙을 만도 하다 싶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과 같이 땅이 넓고 농업이 정책적으로 발달한 나라에서 어떻게 지극히 단순한 형태의 농기구인 한국산 호미가 선호됐냐는 점이다. 물론 한국산 호미가 사용되는 곳은 대평야 지대에 펼쳐있는 농산물 생산지는 아니다. 정원을 소유한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직접 텃밭을 가꿔 채소를 키울 때 경험적으로 한국의 호미가 애호됐고, 입소문을 탔다고 한다. 자동화된 전문적인 농기구는 대량생산에 적합한 모델이다. 농업대국인 미국에서조차 정원 같은 작은 텃밭 가꾸기에는 역시 작은 호미가 최적이었나 보다. 

그런데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호미를 가만히 톺아보면 매우 기능적이며 노동에 적합한 모델이다. 말하자면 소위 ‘휴먼테크(Human Tech)’한 디자인이다. 날카로운 끝을 중심으로 둥글게 휘어 손잡이와 연결되는 도안은 노동하는 이의 힘을 최대한으로 전달하게 한다. 적은 노동으로 최대의 효과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또한 땅을 파기에 적합한 호미의 디자인은 소나 사람이 끄는 쟁기와 닮아있다. 땅을 깊게 파면서 동시에 갈아엎는 ‘쟁기’는 이른 봄에 일찍이 뿌리내린 잡초를 뿌리째 뒤집어 흙 속으로 끌어들여 생장을 멈추게 한다. 이제 흙 속에서 썩어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 잡초는 섭리대로 작물의 비료가 된다. 호미가 쟁기 디자인의 축소판인 이유 또한 기본적으로 잡초 제거에 있기 때문이다. 적은 국토에서 오랜 기간 수탈에 시달린 우리네 농투성이 아낙네들은 자투리땅이라도 붙여 작물을 키워 삶을 지탱하여야만 했기에 한 뿌리의 잡초라도 잡아내야 했다. 

쟁기처럼 땅을 팔 때 기능적인 볼록하게 디자인된 앞쪽 둥근면의 뒷쪽은 반대로 오목한 형태가 되는데, 이는 땅을 밀어 흙을 덮는데 유용한 도구가 된다. 땅을 파기에 적합한 디자인을 역방향으로 이용해 덮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노동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분화된 전문 노동이 아니라 아낙네들이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노동집약적 환경에서는 호미를 이용해 흙을 파고 다시 잡초를 묻거나 씨앗을 심기도 한다. 혹은 모종을 옮겨 심어 흙을 덮고 돋우어 작물을 안정적으로 세운다. 한마디로 하나의 도구로 흙을 파고 심고, 밀어 돋우는 것이 가능하다. 이리저리 옮길 것도 없는 작은 자투리땅에 쪼그려 앉아 흙과 하나 되어 작물을 키워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가난한 아낙네들의 지혜가 축적된 디자인이 바로 우리나라의 호미다. 

작은 호미 하나를 만들기까지 쇠를 접고 펴고 둥글게 두드리고 날카롭게 갈무리하는데도 우리 조상의 지혜뿐만 아니라 그네들의 삶이 녹아든 애환의 정서가 읽힌다. ‘노마디즘(유목주의)’과 생성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바로크의 예술과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접목, ‘주름’이라는 개념으로 존재의 다의성이라는 위계와 층위의 개념을 무력화시킨 ‘존재의 일의성’에 대해 피력했다. 만약 들뢰즈가 호미의 디자인을 직접 보았다면 그는 우리네 농투성이나 대장장이의 손의 주름에서부터 호미의 매끄러운 곡선과 날 선 직선의 디자인에서 우주의 변곡점을 읽었을 것 같다. 

유려한 선으로 이루어진 호미의 디자인엔 쇠를 접어 편 무한히 반복된 시간이 ‘주름’으로 내재돼 있다. 그 주름만큼 이마에 주름진 채 흙으로 돌아갔을 우리네 아낙들의 삶의 애환은 이제 호미에 실려 멀리 유목의 시간을 보내며 다시 세상 어딘가 땅에 주름을 내고 펴기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 아시아투데이 4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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