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여행] 술 금하는 사회
[역사 여행] 술 금하는 사회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19.01.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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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국회에는 술병에도 담뱃갑처럼 건강에 유해하다는 경고 그림을 부착토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이 통과될지, 시행되면 실제로 효과가 나타날지 궁금증이 고개를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술을 ‘사회적으로’ 끊으려 했던 세기에 걸친 시도들의 기록이 음주 후 분방해지는 머릿속처럼 여러 가지 생각을 일으킨다.

절주 선언을 했다가 다시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개인에게야 다반사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헌법으로 ‘술을 끊자’고 했다가 다시 헌법으로 ‘음주 선언’을 한 나라가 있다. 미국이 그랬다. 27개 미 헌법 수정조항 중에 유일하게 수정조항으로 채택했다가 다시 그것을 다른 수정조항으로 폐지한 것이 술 제조 판매 금지에 대한 것이다. 1920년 발효된 수정조항 18조를 통해 술을 만들고 팔지 못하게 했다가 13년 만에 21조에서 이 조항을 폐지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술을 금하는 동기가 지금처럼 개인 건강상의 이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애초에 술을 못 마시게 하자는 움직임은 대량생산체제가 도입된 산업혁명과, 여성 투표권 확대 등 민주주의 발전의 사회적 기운과 한배를 탄 것이었다. 물론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가 1743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술을 사고, 팔고, 마시는 것은 피해야 할 악”이라고 선언한 것처럼 종교적인 영향도 근간에 깔렸지만 말이다.

우선 산업혁명기 신흥 부유층인 공장주, 기업인들은 술을 싫어했다. 산업혁명 선두주자인 영국 런던에서, 늘어난 소득에 노동자들의 진(당시 인기 곡물 증류주) 소비량이 늘고 도시 전체가 감염병처럼 술 취한 사람이 늘어나자 생산라인에 장애가 생기는 일이 잦아졌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술에 대한 자본가적 고민은 동일하다. 포드 자동차를 경영하던 헨리 포드는 술 금지 헌법 수정조항이 실시된 직후 의회에 나가 법 시행 전 1918년 4월에 자신의 자동차 공장 결근이 2620건이던 것이 헌법 발효 후 5월에는 1628건으로 줄었다고 증언했다. ‘술 취한 사회’의 생산량에 대한 정치인, 기업인들의 고민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여성들도 금주를 지지했다. 디트로이트에서 발행되는 ‘아우어 디트로이트(Hour Detroit)’에 따르면 자동차산업이 부흥하던 이 도시에는 당시 6000여 살롱이 있었고 가정학대 발생률은 지금의 5배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여성 투표권 확보와 함께 금주는 여성운동의 한 의제였다. 기독교 여성금주 동맹 같은 여성 단체들이 금주 합법화에 앞장섰다. 이 여인들은 디트로이트 살롱 앞에 줄지어 촛불시위를 벌이며 출입하는 남성들을 창피하게 하려는 시도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도덕적 완벽을 추구하던 미국의 사회개혁가들도 흑인노예 해방과 함께 금주 법제화를 지지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 뉴욕타임스에는 금주 동맹그룹의 시위 소식이 실렸다. 술 판매 금지가 법령화 전인 터에 이들 사회개혁가들은 술의 사회적 추방을 주장하며 뉴욕 거리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지향이 금주운동에 담겼던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절주 캠페인도 개인 건강을 넘어서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을 담아내 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술을 따르며 배려 문화의 의미를 음미한다거나 음주운전의 탈배려성을 각인토록 하는 메시지를 담는다면 음주와 함께 사회적 감수성도 키우지 않을까.

주영기 한림대 미디어스쿨 학장-국민일보 1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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