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죽음은 없다
숭고한 죽음은 없다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18.12.2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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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지난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세의 꽃다운 청년이 유명을 달리했다. 일부 언론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가 주검으로 발견됐을 때 모습은 너무도 참혹했다고 한다. 산업재해라기보다는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형체를 남기고 그의 영혼은 몸을 떠나야만 했다. 얼마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자신의 몸을 붙여보려고 발버둥 치다가 한참을 망연자실했을 것 같다. 동료들이 찾으러 왔을 때 그는 뭐라고 했을까? 아직 살아있다고 어서 119를 불러 달라고 했을까? 아니면 부모님 생각에 자신의 주검이 어떠했는지 알리지 말라고 당부라도 했을까? 

일찍이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대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은 기만이다. 죽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죽어가는 고통을 알겠는가. 전제가 틀린 감정이입은 윤리적이지 못하며 자기연민일 뿐이다. 하지만 무리하게도 그의 영혼이 어떠했을 것인가를 가늠해보는 이유는 절대 보도를 통해 그의 주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죽음은 끔찍했다. 전쟁터의 사진도 주검을 직접 찍은 이미지는 아무리 신속하게 타전돼도 보도되지 않는다. 상상이 가능한 전쟁터의 참상도 언론에서는 거르지 않을 수 없다. 그와 같은 사진은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정신을 황폐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방증이라도 하듯 사고 현장에서 그의 주검을 수습한 동료들은 인터뷰를 통해 한결같이 회사를 떠나겠다고 한다.

20세기 위대한 저술가 수전 손택은 우리가 보도사진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지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한 바 있다. 저널리즘사진은 제한된 프레임 속에 신화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재현, 구축된 이미지를 통해 대중에게 일종의 마취제와 같은 효과를 준다. 그녀의 주장을 요약하면 죽음 이미지와 같은 타인의 고통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미안함과 동시에 우리의 안위를 확인한다. 이러한 심리의 기저는 ‘숭고’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폭풍우를 만나 길을 잃고 좁은 벼랑길을 헤쳐나가는 이의 감정 상태는 숭고함과는 거리가 멀다. 폭풍우를 피해 오두막을 찾아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뜨거운 수프로 허기를 달래고 나서 따듯한 차 한 잔을 든 채 창문을 통해 비바람이 만드는 광경과 굉음을 접할 때 우리는 자연의 숭고함을 느낀다. 자신의 안위와 평온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방송의 언어 역시 우회적인 단어로 죽음을 전한다. 적절하게 정형화된 단어와 이미지들은 그 보도를 접하는 우리에게 죽은 이에 대한 부채의식과 동시에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손택 또한 가해자로 적시된 언론보도의 이미지는 그들만큼 우리는 나쁘지 않았으며 폭력과 죽음의 메커니즘에서 한 발짝 떨어져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일갈한다. 그것이 20세기 대중매체 사회에서 보도사진이 작동하는 기제이다. 언론을 통해 사진에 담긴 타인의 고통을 보는 행위는 중산의식을 가진 이들에게 제공되는 고해성사와 같은 의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원청과 하청의 구조는 비용과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죽음의 외주화로 폭주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어디 김용균씨 뿐일까. 정부나 지자체에도 용역이란 이름의 파견직 근무자가 넘쳐난다. 연일 태안화력발전소의 왜곡된 고용의 행태를 고발하는 공영방송도 원청과 하청의 구조가 정착된 지 이미 오래다. ‘하청의 하청의 구조’ 속에 이 시간에도 프로덕션에서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열정페이’를 강요받는 젊은이들이 재능과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 그나마 대한민국에서 김용균씨의 죽음을 숭고함으로 바라볼 수 있는 중산의식을 가진 계급계층 역시 IMF이후 지속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중이다.

생전에 고인이 첫 출근을 앞두고 기뻐하는 동영상이 매체에 올라왔다. 해맑아 보이는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보통의 우리네 이웃이었다. 어디 남의 일인가. 더 이상 숭고한 죽음은 없다.

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 아시아투데이 12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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