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두려움… 일상 속 현실적 공포
새로운 두려움… 일상 속 현실적 공포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18.12.1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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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어락’ 리뷰]
영화 <도어락> 공식 포스터

집에 들어가기 전 매일 마주하는 ‘도어락(door-lock)’. 과거 열쇠로 잠금장치를 사용하던 것에서 최근에는 전자식 번호를 눌러 출입할 수 있는 도어락을 설치한 곳이 많아졌다.

잘 알고 있는 물건이라서일까. 도어락에 스릴러를 접목시켰다는 얘기만 듣고도 누군가 도어락을 이용해 주거 침입하는 뻔한 스토리가 생각났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 공포 스릴러라기보다는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함축적으로 묘사돼 있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도어락’은 1인 가구 여성들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무섭고도 슬픈 현실에 초점을 맞췄다.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여성 경민(공효진)이 집에서 이상한 일을 겪는 것으로 시작한다. 집에서 낯선 흔적을 발견한 경민은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피해를 입은 게 없지 않냐”며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별거 아닌 문제로 신고하지 말라”고 오히려 경민을 타박한다.

경찰의 말에 의기소침해진 경민은 아무 수확 없이 방에 돌아가 수면제를 먹고 잠자리에 든다. 그가 잠에 빠져든 순간 침대 밑에서 낯선 남자가 나오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최근 여성들이 혼자 사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남자 구두를 현관에 놓고, 남자 옷을 거실에 보이게 걸어둔다고 한다. 혼자 사는 여성이 범죄의 타깃에서 벗어나려 ‘보안용’으로 해놓는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경민도 현관에 남성 구두를 놓고 ‘남자와 같이 사는 척’하지만 그에게 닥치는 문제는 그가 조심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경민의 몫이었다. 경민을 도와 같이 범인을 잡으려고 했던 것도 비슷한 처지의 직장동료 효주(김예원)였다. 주인공은 남성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범인을 잡았다. 남성은 도와준다기보다 오히려 가해자와 무능력한 인물로 나왔다.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면 여성이 주체가 돼 일을 해결하는 ‘페미니즘’도 엿볼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7년 대한민국 1인 가구는 총 562만 명으로 2000년 222만 가구에서 152.6% 증가했다. 그중 절반 이상이 ‘1인 주거 여성’이라는 점에서 ‘도어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혼자 사는 여성에게 경각심까지 심어주며 여성들의 잠재적 공포를 담아냈다. 영화는 현실에서 있을 법한 주제를 선정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몰아붙여 이야기를 전개한 것은 아쉽다. 계약직인 주인공이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것, 직장에서 만난 남자에게 스토킹을 당하는 것, 혼자 사는 집에 변태 살인마가 침입하는 것 등 과도한 클리셰들이 섞여 작품을 진부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영화로 만들었다. 다만 소극적이고 무기력했던 주인공을 극단적으로 몰아넣음으로써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한 것은 여성들의 주체적인 삶을 응원하는 메시지로 볼 수 있었다.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특히 공효진의 캐릭터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물로 묘사돼 우리에게 친근함을 끌어냈고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극 중 상황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온 집에서 매일 누르던 도어락이 갑자기 낯설어 보였다. 괜히 영화 속 주인공처럼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꿔 보기도 했다. 내 집에서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이 같은 영화에 공감하지 못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최희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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