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나 상상!
어디까지나 상상!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18.11.0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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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일련의 영화에서 보이는 문제의식은 ‘국가적 폭력의 어처구니 없음’에 있다. 그를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살인의 추억’이나 1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괴물’, 그리고 기존의 쿨한 연출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선전한 ‘설국열차’ 등 작품을 관통하는 풍자와 알레고리의 날카로움은 진짜 폭력을 숨기고자 하는 국가적 차원에서 조작되는 지배이데올로기를 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을 고른다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살인의 추억’을 들고 싶다. 잘 알려진 대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화성연쇄 살인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까지 태안읍 부근에서 일어난 일련의 부녀자를 상대로 한 미제 살인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1986년 8월 14일에 발생한 특정 사건에 대한 기사는 근 한 달간 온 일간지의 5면을 통으로 할애해 실렸다. 일명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이다. 잔혹한 칼부림으로 4명이 목숨을 잃었고 여럿이 불구가 된 조직폭력배 집단 간의 우발적인 난투극은 아마도 사회면 기사론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사건으로 기록돼 있지 않나 싶다. 이때 전 국민은 당시 이름도 생소한 ‘아킬레스건’이라는 발목 부분의 인대가 예리한 칼로 절단되면 불구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는 전문 칼잡이들의 솜씨로 알려졌다. 이후 아킬레스건이라는 용어는 상식이 됐고, 조폭 영화의 칼부림을 미화해 표현하는 데 일조했다.

흥미롭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사건이 일어나기 열흘 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처하기 위해 국민 성금으로 만들어진 독립기념관이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춘 개관식을 목전에 두고 화재로 지붕 부분이 전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여론은 들끓었다. 건설사의 부정과 아시안게임에 맞춰 공사기간을 앞당길 것을 주문한 정부의 행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급기야 해당 건설사가 나서 전국 일간지에 대대적인 사과문을 내걸었지만,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이었다. 이슈가 이슈를 덮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한 언론이 나서서 여론을 덮은 게 됐다.

일전에 일간지에서 미스테리한 기사를 읽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시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로 수감 중인 재소자들이 특사로 풀려났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접한 필자는 일견 살인을 저지른 자도 얼마든지 특사로 풀려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문제는 그 수였다. 무려 320명이나 되는 강력 범죄자들이 대거 풀려났다는 사실이다. 기사에 실린 당시 사면심사위원회에 참여한 법조계 인사들 대부분도 그게 사실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수긍하는 듯했다.

그러나 위원회에서는 각종 비리로 수감 중인 정치경제계 인사들에 대한 사면과 일반인에 대한 사면의 균형을 고려하는데 집중할 뿐, 일반사면 대상들에 대한 서류 하나하나를 살펴보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궁색해 보였다. 애써 인터뷰를 피하거나 혹은 살인자에 대해 원천적으로 사면대상에서 제외될 경우 인권문제가 대두된다고 강하게 반응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 숫자에 짐짓 놀라거나 기자가 엉터리 자료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냐는 태도를 보였다. ‘형기를 3의 1 이상 마친 가석방 대상자에 대한 석방이었다’는 법무부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처럼 보였다.

한국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으로 기록된 화성의 일련의 사건들이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공개수사로 전환한 건 6차례의 희생자가 발생한 1987년 5월 이후였다. 묘하게도 그 시기는 시민사회의 반정부 데모가 정점에 다다른 시간과 겹친다. 어디까지나 추론이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1986년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보도로 반정부 여론을 잠재웠던 당시 집권세력이 사건을 방치 혹은 방기함으로써 키운 후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로 시민들의 눈을 그쪽으로 돌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는지 의심이 드는 면도 있다.

만약 MB 집권 시기에도 광우병 파동과 촛불집회로 혼쭐이 난 정권이 재범률이 높은 강력범들을 대거 사면해 사회적 혼란과 이슈를 만들고, 다시 이를 근거로 경찰력을 강화해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했다면,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은 가공을 넘어 우리의 일상을 파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상상이 그저 유쾌하지 않은 과한 농담 정도로 들렸으면 좋겠다.

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 아시아투데이 10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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