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트 맨’, 어떤 특별함과 평범함의 사이에서
영화 ‘퍼스트 맨’, 어떤 특별함과 평범함의 사이에서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18.10.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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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취를 남긴 닐 암스트롱은 특별한 사람이다. 수많은 역경을 견뎌내고 극복한 사실만으로도 그는 진정한 퍼스트 맨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특별한 이가 있다면 그의 아내 자넷이 아닐까 싶다. 영화 ‘퍼스트 맨’에서 그녀는 고집스럽게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인내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렇다고 헌신적인 캐릭터로만 묘사돼 있진 않다. 당장 달로 떠나야 하는 남편을 붙잡아 세워두고 아이들 앞에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접 말하라”고 다그친다. 더 이상 자신이 그런 말을 아이들에게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아내 자넷이 견뎌냈어야 할 시간들이 어떠했을지 그 감정선이 잘 전달된 대사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암스트롱의 임무는 줄곧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 자넷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선에서 암스트롱은 침착했지만, 사실 그의 일상은 불안의 정서로 가득하다.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딸 캐런에 대한 기억은 그의 일상에선 지워져 있지만, 생사의 문턱에 서면 늘 살아난다.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은 곧 죽은 딸과의 랑데부를 의미하기에 어쩌면 그는 늘 침착하게 죽을 준비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내 자넷에겐 남편과 죽은 딸 말고도 챙겨야 할 어린 사내아이들이 둘 더 있다. 그녀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기에 더 아픈 존재이다. 만약 남편이 죽더라도 그녀는 살아남아 견디어야 할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등장인물들을 대부분 헌신적이거나 영웅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기보다는 내면적 갈등이 그대로 드러나는 불안한 존재로 그리기 때문에 오히려 리얼리티가 잘 드러난다. 이런 방식의 재현은 전쟁의 비참함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와 같은 작품에 어울리는 듯싶다. 만약 동일한 포맷으로 전쟁터에 보낸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한다면 아마도 그 작품은 우리의 폐부를 찌르며 가슴 속 깊이 치밀어 들어올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자의 아픔과 인내해야 할 시간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큐멘터리를 찍는 동안 아들의 전사 통보라도 날라 온다면 다큐멘터리 촬영자에게도 그 영상을 온전히 담는 것 자체가 고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다큐멘터리와 영화 ‘퍼스트 맨’의 경우 기다리는 주체의 입장에서 비교해보면 어떤 차이도 없다. 전자의 아들이 평범한 인물들이라면 후자의 닐 암스트롱은 인류가 기억할 만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는 점에서 분명하게 구분된다. 하지만 기다리는 자의 마음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퍼스트 맨’에서 아내 지넷 역할을 맡은 클레이 포이의 표정 연기처럼 오직 애타는 마음에 퀭해진 눈빛만이 기다림의 시간을 채울 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퍼스트 맨’은 영리하게도 인류사적으로 분명 특별한 인물인 닐 암스트롱을 할리우드 특유의 애국주의적 영웅들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임무수행에 앞서 가지는 기자회견에서조차 여유로운 유머도 혹은 뼈있는 농담도 구사할 줄 모른다. 또한 판단에 있어 매우 현실적인 결정을 하는 임무수행자이지만, 일상에선 불안함을 감출 줄 모르는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다. ‘퍼스트 맨’의 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닐 암스트롱에게서 특별한 무엇을 뺀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닐 암스트롱이 2차 세계 대전의 참전용사이며 한국전쟁에도 제트기조종사로 참전하였다는 사실이다. 청춘기에서 황금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은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선에서 지낸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아내 자넷은 이런 특별한 사람인 암스트롱이 자신에겐 안정적이고 평범한 남편이기를 바라며 그가 우주에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암스트롱이 청년이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전시에 전장에 나간 평범한 군인들 중 하나인 그러나 자신에겐 소중하고 특별한 아들 닐이 전장에서 돌아오기를 목 놓아 기다렸을 것이다. 암스트롱이 어머니의 애타는 마음을 알게 된 것은 자신의 어린 딸을 잃고 나서이다.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깨달기도 전에 그의 딸 캐런은 훌쩍 그들 부부를 떠나 버렸다. 그런 암스트롱에게 ‘달’은 다다라야할 목표가 아니라 흡사 죽음과도 같은 자신을 의탁할 생사의 경계에 서있는 어머니이다. 또한 자신의 딸을 묻어주어야 할 ‘고요의 바다’는 어머니의 시린 젖가슴이다. 딸을 묻은 그는 이제 비로소 지구에 남겨둔 아이들의 평범한 엄마에게 돌아가야 한다. 인류가 수행하는 ‘끊임없는’ 전장에서 잠시만이라도 자신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퍼스트 맨’은 우주영화도 영웅서사도 아니다. 이는 애국주의를 밑에 깔아둔 전쟁영화와도 구분된다. 그 이유는 닐 암스트롱과 같은 특별한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평범한 이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기다림에 대한 아픔을 그린 ‘삶과 죽음의 경계로서 전쟁에 대한 은유’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퍼스트 맨’은 전쟁터에 나간 자식과 남편을 기다리는 평범한 어머니와 아내들에 대한 영화다. 

이황석(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 - 아시아투데이 10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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