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수많은 이별을 한다. 우리의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만남이 없는 헤어짐은 없고 그 반대 또한 없다. 따라서 이 둘은 하나의 불가분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제주 4.3 사건을 가감 없이 거칠게 담아낸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부터 다르게 말한다. 무엇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한강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을 통해 문학계의 노벨상이라는 불리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국제적인 작가이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 학살 이후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서사들이 담겨있다. 작가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주제를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담담히 표현한다.
주인공 경하는 탈고 후 우울감과 회의감에 빠져 일상으로 회복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런 경하는 병원으로 와달라는 친구 인선의 문자를 받는다. 그 후 경하는 인선으로부터 70여 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로 인해 가족을 인선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죽은 사람의 얼굴 위로 내려앉은 피어린 살얼음은 녹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소녀. 소녀가 긴 삶을 살아가며 느낀 고통. 나의 부모와 나의 형제, 나의 이웃을 잡아먹은 바닷고기를 마주한 소녀의 슬픔을 우리는 책을 통해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밀도 높은 문장들을 구사해 몇 줄의 문장만으로 장면을 선명히 보여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그때의 차갑고 시린 아픔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낸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것이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 이야기임을 알아차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오빠의 행적을 찾았던 인선의 엄마 정심, 아픈 어머니를 보필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제주로 내려갔던 인선, 인선의 부탁으로 폭설 속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새를 구하러 갔던 경하의 행동 등 이 모든 건 사랑이었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각 인물의 행동이 모두 사랑에 의한 것임을 시사하며 4.3 사건의 이야기 너머의 모든 사랑의 순간들을 찾아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책의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 였던 것은 그날의 제주도의 비극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잊지 않겠다는 것은 애도를 멈추지 않고 결코 끝내지 않겠다는 결의이다. 계속해서 통증을 느끼지 않으면 신경이 죽어버리기에 삼 분에 한 번씩 봉합된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야 하는 인선처럼 우리가 제주도의 비극에 대해 기억하지 않고 고통받지 않는다면 역사의 한 부분이 죽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가 있었기에 작가는 책 속 등장인물들의 고통에 대해 고약한 표현을 구사했던 것이었다.
작가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일방적인 학살로 인해 이유 모르게 감옥에 갇혀야 했으며, 총상을 당하고 갱도에 갇혀 죽어야 했던 그들의 고통을 과하리만치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사실적 묘사들은 내가 피해자의 가족이 된 것처럼. 또 내가 피해자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책을 읽으며 느낀 분노와 무력감 속에서 회피가 아닌 맞서 싸울 용기를 얻어 소설 속에 새겨진 4.3 사건의 기억을 잊지 않고 고통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갑작스러운 이별과 그 이별이 고통스럽겠지만 기억하겠다는 의지. 이 모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 사랑의 일부분이다. 이것이 비록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할 지라도 잊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우리가 잊고 사는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또한 이를 기억하며 작별하지 않길 바란다.
손윤서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로컬뉴스공급 캡스톤디자인> 수업의 결과물로 4월 17일 <사이드뷰>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