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는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1990년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한 스포츠 장르 만화다. 불량배인 주인공 ‘강백호’가 북산고 농구부에 입부해 인터하이(전국체전)에서 최종 우승하기 위해 강호 학교와 맞붙는 전형적인 왕도물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완결 26년 만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극장판이 스크린 흥행하며 레트로 열풍과 함께 원작 만화를 향한 관심도 뜨거워지는 가운데, 학창시절 이후 잊었던 <슬램덩크>를 향한 사랑이 끓어오른다. 농구 물이 들어온다. <슬램덩크> 러버로서 노를 힘껏 저어보려고 한다.
사쿠라기 하나미치 말고 ‘강백호’, 루카와 카에데 말고 ‘서태웅’
농구를 모르는 사람도 슬램덩크는, 슬램덩크는 몰라도 강백호와 서태웅은 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 만화인 슬램덩크가 익숙한 이름 석 자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각인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대중 정부 일본 대중매체 개방 이후 수입한 콘텐츠에 대해 한국 정서에 맞는 현지화가 적용됐다. 1992년 국내 잡지 대원(현 대원씨아이)에서 연재된 <슬램덩크>도 이러한 영향이 미쳤다. 로컬라이징한 이름이 캐릭터의 특성과 잘 어우러진 것 또한 거부감을 줄이는 요인이 됐다. 호랑이처럼 불같은 성격의 열혈 주인공 강백호와 그의 라이벌이자 곰처럼 과묵한 성격의 에이스 서태웅, 그야말로 ‘찰떡’인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클리셰는 거들 뿐
<슬램덩크>는 채소연이라는 여성 동급생의 호감을 얻기 위해 농구부에 입부한 불량학생 강백호가 동료와 함께 점차 ‘풋내기’에서 ‘스포츠맨’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기존 스포츠 장르를 비롯한 소년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개인 탓에 이미 유사한 내용의 내용을 접한 독자에게는 진부한 클리셰로 다가온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보여주고자 하는 <슬램덩크> 속 진정한 영광은 ‘전국 제패’가 아니다. 승리하고자 하는 열정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농구’를 향한 순수한 애정. 독자는 관중으로서, 코트 위 40분 동안 펼쳐지는 그들의 진정한 ‘영광의 시대’를 함께한다.
명장면을 제압하는 자가 명작을 제압한다
고전 명작이 되기 위한 필수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역시 명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슬램덩크>는 수많은 명장면을 배출한 만화로도 유명하다. 그중 강백호와 서태웅의 하이파이브 씬은 인터넷은 물론 다양한 방송 매체에서도 등장할 만큼 대중에게 친숙한 장면이다. 흑백 만화에서 이례적인 강렬한 색채의 컬러감과 탄탄한 작화 기반의 역동적인 묘사는 두 인물의 서사가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과 그에 따른 감정 변화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 줄의 대사 없이도 흐르다 못해 온몸을 적시는 땀, 가쁜 호흡, 손뼉이 부딪히며 생기는 작은 스파크를 통해 작가는 두 사람의 우정을 전하고 있다.
종이 밖 세계의 슬램덩크
농구에 대한 전반적인 고증과 더불어 실제 인물과 장소 모티브는 <슬램덩크>의 입체감을 더해주는 요소 중 하나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한 인터뷰에서 강백호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데니스 로드맨, 서태웅은 시카고 불스 마이클 조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실제 출시된 농구화 모델을 캐릭터가 착용하거나,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오프닝에 등장한 에노시마 전철 건널목을 비롯해 가나가와현 지역의 실제 모습이 그대로 배경으로 삽입하는 등 단순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도 ‘과몰입’하도록 하는 묘미도 존재한다.
다 울었니? 이제 농구를 하자
<슬램덩크>에서 농구는 스포츠를 넘어 청소년기의 미숙함과 정체성 혼란을 위로해주는 존재다. 코트 바깥에서는 비행 청소년이던 강백호와 정대만, 사교성이 부족한 서태웅, 편모 가정인 송태섭이 붉은 유니폼을 입고 호각 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스포츠맨’으로 돌변한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비록 방구석 ‘스포츠맨’이지만, 학창시절 <슬램덩크>를 읽으며 그들과 함께 가슴 뜨거워진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슬램덩크>는 뻔하다. 하지만 그 속에 감동이 있다.
기소연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뉴스작성기초> 수업의 결과물로 12월 13일 <사이드뷰>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