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접한 자전거 사진, 국가대표까지 하게 만들었죠"
"우연히 접한 자전거 사진, 국가대표까지 하게 만들었죠"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3.05.0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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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프랑스 발달장애 '버투스 글로벌게임' 출전하는 사이클 국가대표 원종웅 선수
사진=도로 훈련이 임박한 지난 14일 오전, 춘천시 동물복지센터 앞 주차장에서 자전거 상태를 점검 중인 원 선수(좌), 자전거에 새겨진 태극기와 그의 영문이름(우). 원 선수는 월요일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훈련에 매진한다. 실내 훈련을 하는 날은 약 70km 정도의 거리를 실내 자전거로 소화하며, 도로 훈련이 잡힌 날에는 약 70km에서 100km의 거리를 달린다.
사진=도로 훈련이 임박한 지난 14일 오전, 춘천시 동물복지센터 앞 주차장에서 자전거 상태를 점검 중인 원 선수(좌), 자전거에 새겨진 태극기와 그의 영문이름(우). 원 선수는 월요일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훈련에 매진한다. 실내 훈련을 하는 날은 약 70km 정도의 거리를 실내 자전거로 소화하며, 도로 훈련이 잡힌 날에는 약 70km에서 100km의 거리를 달린다.

1996년 서울에서 태어난 원종웅(28)씨는 중학교 입학 당시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고교 시절 우연한 기회에 사이클을 접한 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본격적으로 사이클에 매달리기 시작한 2015년부터 각종 국내 사이클 대회에서 1위를 휩쓸었다. 2018년에는 버투스 글로벌 게임으로 이름을 바꾼 프랑스 INAS 지적장애인 월드컵에 유일한 한국 대표로 출전해 11위를 기록했다. 올해 2월 열린 '제20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에선 크로스컨트리 4km 클래식 동호인부(IDD) 1위를 차지하며 동계 스포츠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사회성이 크게 호전되면서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둔 시점, 오는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국제 발달장애인 엘리트 스포츠 대회 '2023 버투스(Virtus) 글로벌 게임'에 사이클 국가대표로 발탁된 원종웅 선수를 만났다. 

지적장애 학생이 국내 최정상급 선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훈련 과정을 직접 지켜보기로 했다.

사진=춘천시 동물복지센터에서 출발, 이후 춘천댐 삼거리까지의 코스를 반복하는 도로 훈련 도중, 자전거 대열의 선두에서 바람을 막으며 질주하는 원 선수(파란색 옷)와 그 뒤를 따르는 비장애인 경륜 선수들(좌). 대열의 선두는 공기 저항을 가장 크게 받기 때문에 체력 소모 또한 가장 심한 위치다. 인터벌 훈련 도중 대열에서 나와 독주 중인 모습(우).
사진=춘천시 동물복지센터에서 출발, 이후 춘천댐 삼거리까지의 코스를 반복하는 도로 훈련 도중, 자전거 대열의 선두에서 바람을 막으며 질주하는 원 선수(파란색 옷)와 그 뒤를 따르는 비장애인 경륜 선수들(좌). 대열의 선두는 공기 저항을 가장 크게 받기 때문에 체력 소모 또한 가장 심한 위치다. 인터벌 훈련 도중 대열에서 나와 독주 중인 모습(우).

사이클과 만나다
    
종웅씨와 자전거의 만남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합기도를 가르쳐주던 관장님의 자전거 동호회 활동사진을 우연히 보고 매력을 느꼈다. 마침 종웅씨의 아버지도 아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자전거를 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그의 10여 년 자전거 주행의 첫 출발점이었다. 

2015년 참가한 '배후령 힐클라임 대회'는 종웅씨가 처음으로 출전한 사이클 대회다. 이 대회는 비장애 동호회인을 대상으로 열렸던 만큼 걱정도 많았다.

당시 종웅씨와 경기를 함께 할 수 없어 결승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대회 도중 종웅이에게 넘어졌다는 전화가 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뒷바퀴 펑크로 인해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전신에 찰과상을 입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현장에 있던 교통 통제 경찰관에게 아들의 상태를 물었다. 이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상태다"라는 답변이 들려왔다. 전화를 건네받은 아들은 "끝까지 타고 올라가겠다"며 힘차게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종웅씨는 입고 있던 옷이 찢어지고 온몸에 찰과상을 입은 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는 "넘어졌을 때 왠지 몰라도 끝까지 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중간에 기권하면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 같았다"고 전했다.

사진=자전거 대열 후미의 원 선수(파란색 옷, 좌). 자전거 입문 초반에는 대열에서 이탈하는 일도 잦았으나, 현재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훈련 당시 자전거 대열을 따라가는 자동차 계기판의 바늘은 항상 40km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우).
사진=자전거 대열 후미의 원 선수(파란색 옷, 좌). 자전거 입문 초반에는 대열에서 이탈하는 일도 잦았으나, 현재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훈련 당시 자전거 대열을 따라가는 자동차 계기판의 바늘은 항상 40km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우).

꾸준한 노력
      
첫 출전에서 보인 종웅씨의 끈기는 날이 갈수록 강도를 더해갔다. 꾸준한 훈련을 거쳐 2015년 전국장애인사이클선수권 대회 겸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3.5km 트랙 부문 2위에 올랐다. 이듬해 열린 강원도 생활체육대회에선 1km 독주, 2km 개인출발 부문 모두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종웅씨의 장애는 오히려 힘이 됐다. 올해로 함께한 지 4년 차가 된 강원도장애인체육회 소속 공민우 지도자는 "종웅이는 요령 피우지 않는다. 두려움도 없다.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훈련하니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종웅씨의 아버지조차 "자전거 입문 전에는 이렇게 승부욕이 강한 줄 몰랐다"고 할 정도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지적장애는 승부욕과 꾸준한 노력이라는 동력으로 기어를 바꿨다.

종웅씨 본인도 "무엇이든 한 번 하겠다고 결심하면 끝까지 하는 성격"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이력에는 사이클 대회뿐 아니라 전국장애인기능대회 바리스타 부문 은상,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크로스컨트리 부문 금메달 등 도전의 흔적이 선명했다. 종웅씨는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동계 시즌에는 크로스컨트리 종목을 연마하고 있다.

사진=2019년, '제36회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바리스타 부문에 출전한 원 선수(좌). 이 대회에서는 은상을 수상했다. 올해 초 열린 '제20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크로스컨트리 4km 클래식 IDD(동호인부)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원 선수(우) 출처=원종웅 선수 아버지 제공
사진=2019년, '제36회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바리스타 부문에 출전한 원 선수(좌). 이 대회에서는 은상을 수상했다. 올해 초 열린 '제20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크로스컨트리 4km 클래식 IDD(동호인부)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원 선수(우) 출처=원종웅 선수 아버지 제공

될 때까지 훈련해 되찾는 선수

종웅씨에게도 어려움이 없지는 않다. 공 지도자는 "비장애인 선수에 비해 몸의 기억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다"며 "하루 이틀은 괜찮지만, 동계 시즌 석 달 정도 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코너를 들어가는 기술이나, 안전하게 라인을 타는 기술 등이 잊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다시 지도하면 될 때까지 훈련해 회복한다. 종웅이의 기량은 말 그대로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좋은 성적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종웅씨는 "연습을 안 하면 그사이 다른 사람들이 연습해서 1등을 빼앗길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하다"며 성적 유지에 대한 조바심을 내비쳤다. 이에 아버지와 가족들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하기 싫으면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며 응원해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종웅씨가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더는 방법은 바로 '자전거'다. '스트레스를 떨쳐내는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전거를 타면서 바람이 온몸을 스치면, 스트레스도 같이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자전거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꾸준함을 겸손으로, 노력을 유연함으로
      
종웅씨는 '대회에서 1위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부모님과 공민우 지도자를 꼽았다. "부모님과 코치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종합한 결과, 부모님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조력자이고 공 지도자는 종웅씨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에 유연함을 더해주는 조력자였다.

종웅씨는 자전거 선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항상 최선을 다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답했다. 아버지가 늘 하는 말인 "자전거 잘 타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으니 나서지 말고 겸손하라"를 강조한 것이다. 

이에 아버지는 "가족의 역할보다는 선수 본인이 잘하는 게 중요하다"며 "식단관리부터 훈련까지 자신이 알아서 하기 때문에 가족이 할 일은 많지 않다"고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종웅이가 코치님에게 SNS 메시지나 전화를 자주 할 때가 있다. 귀찮을 수 있는데 언제나 친절하게 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지도자에게 공을 돌렸다. 

공 지도자는 "종웅이는 자신이 아픈 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다. 몸 상태가 안 좋아도 일단 훈련을 먼저 하려는 경향이 있다. 부상 위협을 줄이기 위해 항상 스트레칭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어 "운동을 오래 하다 보니 해이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항상 열심히'인 종웅이를 보고 오히려 배운다"며 제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원 선수의 '롱 런' 비결에는 부모님의 조언과 공 지도자의 당부가 있었다.

사진=도로훈련 직전 페달과 고정이 가능한 자전거 전용 신발을 착용 중인 원 선수와 공민우 지도자(좌). 훈련 도중 원 선수 헬멧에 부착된 블루투스 통신 장비의 상태를 확인 중인 공 지도자(우).
사진=도로훈련 직전 페달과 고정이 가능한 자전거 전용 신발을 착용 중인 원 선수와 공민우 지도자(좌). 훈련 도중 원 선수 헬멧에 부착된 블루투스 통신 장비의 상태를 확인 중인 공 지도자(우).

멈추지 않는 꿈
       
종웅씨는 오는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2023 버투스(Virtus) 글로벌 게임'을 위해 출전한다. 이 대회는 발달장애인도 패럴림픽 참가가 가능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열리는 경기로, 패럴림픽이 열리기 1년 전에 개최된다. 현재 발달장애인은 패럴림픽에 참여할 수 없다. 발달장애에 속한 지적장애를 가진 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종웅의 꿈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나가는 프랑스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고 싶다. 국내 대회뿐 아니라 국제 대회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지난 12일 도로 훈련 중 비가 내렸다. 그러나 원종웅 선수의 자전거는 빗방울이 굵어질수록 가속도가 붙는 듯했다.  

이승윤 대학생기자의 기사

* "지금의 기사는 <로컬뉴스공급 캡스톤디자인> 수업의 결과물로 4월 26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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