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온라인 유료강좌와 뭐가 달라" 39% 증가한 자퇴생
"학교, 온라인 유료강좌와 뭐가 달라" 39% 증가한 자퇴생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2.11.2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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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 교육에 회의감 한목소리... 긍정적 자퇴 이미지 뉴미디어 확산도 영향

서울 특성화 고등학교 재학 중인 학생 A(18)군은 제빵과를 희망했지만 원하지 않은 회계과에 가게 됐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적 등급에 따라 수강인원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A군은 '빵을 만들고 싶은데 성적이 뭐가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들어 학교를 계속 다닐지 말지 고민 중이다.

최근 학교를 떠나는 고교 자퇴생들이 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권은희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 학업 중단 청소년은 2020년 3만2027명에서 2021년 4만2755명으로 33.5% 증가했다. 고등학생만 따로 보면 전년대비 39%로 증가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퇴생의 증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학교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학교 교육의 의미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난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대학입시 위주의 고교 교육이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었으니 온라인 유료강좌와 다를 바 없고 그냥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가겠다는 극단적인 사고가 일부 확산된 여파라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꿈을 찾는 과정으로서의 학교가 아니라 그저 대학을 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한 고교 교육이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으며 파생된 부수효과인 셈이다.

양주시 고등학교 조아무개(29) 교사의 설명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조 교사는 "학생들이 자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생활 속에서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경쟁할 자신이 없거나 학교에서 자신의 진로를 준비할 수 없는 학생들의 경우, 고등학교에서 어중간한 성적을 받는 것보다 시간도 아끼고 공부도 쉬운 검정고시를 응시한다"는 것이다.

춘천시 한 사설학원의 남아무개(27) 강사는 "학원생 중 학교 다니기 귀찮아서 자퇴를 한 학생이 있다는 걸 들었다"며 "학교가 적성에 안 맞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왔다 갔다 할 이유가 없어 고1 때 자퇴하고 검정고시 본 후 수능 준비를 한다더라"라고 전했다.

남 강사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학교 내신을 잘 따야 하는데 애들이 시험 한번 못 보면 '이번 생은 망했다'는 등 세상이 끝난 것처럼 말한다"며 "학교가 본인들의 대학 입시에 도움이 안 되면 자퇴를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라 놀랐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대학수학능력시험 접수자 중 검정고시 등 기타 수험생은 2019학년 1만 1331명, 2020학년 1만 2439명, 2021학년 1만 3691명, 2022학년 1만4277명, 2023학년 1만5488명으로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청소년들의 자퇴 증가는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치는 데, 가장 먼저 미디어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TV·유튜브·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자퇴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가깝게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자퇴가 '곧 새로운 시작'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유튜브에 자퇴를 검색하면 자퇴 브이로그, 자퇴 Q&A 등 관련된 다양한 영상들을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의 희망 직업 순위에서 크리에이터가 빠지지 않는 현상에서 볼 수 있듯, 학교 교육과는 별개로 다양한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이 미디어에 비치면서 긍정적 자퇴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SNS를 통해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의 새로운 소통 창구도 등장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는 자퇴를 생각 중인 학생들이 모여 정보와 고민을 교환하고 있다. 이 채팅방에서는 구체적인 자퇴 방법과 학교 밖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 등이 공유되고 있다.

강동구 청소년 교육복지관 관계자 B(26)씨는 "학교 밖 청소년은 다양한 이유로 늘어났지만 최근에는 미디어에 비치는 자퇴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 긍정적으로 변했고, 요즘 학생들이 미디어를 활용한 정보 습득에 능숙하고 빠르기 때문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퇴학생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실질적인 진로탐색 수업의 부재를 들 수 있다. 학생들의 꿈을 찾아주려는 노력이 학교 프로그램에 전무한 것은 아니다. 진로탐색을 위해 흥미적성 검사를 실시하고, 검사 후 비슷한 성향을 가진 학생들끼리 조를 이뤄 관련 도서를 읽거나 희망 진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대학교 전공생, 직업인 등을 초청,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로탐색 프로그램이 학생들이 꿈을 찾는데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는 미지수다. 이들 프로그램이 책상에 앉아서 듣는 수업을 넘어 다양한 직업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 교육은 어떤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모색 차원에서 기자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온 고등학교 재학 중인 김아무개(17)양과 강아무개(17)양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교에서 배우고 싶은 수업이 있냐는 질문에 김 양은 "법 공부를 해보고 싶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고 사회생활 잘하는 법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김 양은 또 "다양한 언어 수업도 듣고 싶다"며 "지금은 일본어, 중국어 두 과목 밖에 없는데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강 양은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학교 가면 매일 같은 공부를 하고 시험 보기 위해, 대학 가기 위해 모두가 똑같이 공부한다"며 학교 생활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토로했다.

자퇴생이 증가하는 학교 교육 현장의 변화를 계기로 대학 입시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학교 교육 체계가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에 맞게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수빈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헬스저널리즘 입문> 수업의 결과물로 11월 1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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