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 된 춘천 닭갈비, 왜 외면받나?
'고인물' 된 춘천 닭갈비, 왜 외면받나?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18.09.2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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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맛·비주얼 개발, 시의 지원도 필요

휴가철에도 닭갈비 골목을 찾는 사람들을 찾기 힘듭니다. 주말 저녁에도 테이블이 차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요. 갈수록 손님이 줄어 아르바이트도 고용도 어려운 처지입니다.”

춘천 대표 먹거리 관광지인 조양동 명동 닭갈비 골목에서 닭갈비·막국수 업소를 운영 중인 A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명동 닭갈비 골목은 24시간 운영하던 식당이 새벽 2시까지로 영업시간을 단축하거나 일부 음식점은 낮에 문을 열지 않고 저녁 장사만 하고 있었다.

닭갈비·막국수 업체들이 불황은 구제역과 AI로 인해 불어온 금세 스쳐 지나갈 소나기인 줄 알았으나 한번 끊겨버린 소비자들의 발길은 되돌리기 쉽지 않았다. 시내 닭갈비 업소 총매출이 약 45천억원 대를 유지하며 지역경제 산업유발·고용창출 효과를 올리는 효자 산업이었던 것은 이제 옛 얘기가 돼버렸다. 불어닥친 경기불황에다 매번 똑같은 품질에 소비자들의 마음이 떠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달 초 막을 내린 2018 춘천닭갈비막국수축제에서도 감지되었다. 올해 축제는 역대 최악이라는 혹평과 함께 초라하게 끝이 났다. 축제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춘천닭갈비막국수축제의 2016년 방문객은 약 60만 명이었으나 지난해 약 28만 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지역경제 파급효과 역시 약 89억원 가량 줄어들었다. 올해는 그의 절반도 채 미치지 않는 12만 여명 가량 밖에 참석하지 않았다. 규모가 2년 사이에 5분의 1 수준으로 준 것이다. 축제 관계자에 따르면 폭우로 인해 개막 초기 이틀간 정상적인 진행을 하지 못한 것도 작용하긴 했지만 날씨와 무관한 소비자들의 외면의 기운을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처럼 대표브랜드인 닭갈비·막국수 산업이 침체를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원재료공급을 전적으로 타 지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한 원인이다. 메밀과 닭의 생산·가공을 위한 기반산업의 연구와 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그동안 끊임없이 지적돼 왔지만 시는 별다른 개선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최소한 행사 기간만이라도 지역에서 생산된 원자재를 사용하게 독려하고 업소 차림표의 정가·생산지·무게 등에 속임수가 없도록 관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진호 춘천시의원은 지난 20일 의회 시정 질문을 통해 시에 원재료 공급을 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이 없는 것을 지적하며 전담부서나 사업단을 구성하고, 축제기획 관련 학과를 대학에 신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중국인 관광객의 감소 역시 춘천 닭갈비 시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명동 닭갈비 골목은 몇 해 전만 해도 남이섬과 함께 춘천 필수 관광지 코스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A씨는 옛날엔 깃발을 든 관광 가이드를 따라 단체로 온 중국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사드 여파로 금한령이 내려지면서 유커들의 발걸음이 끊겼다는 것이다. 특히 명동 닭갈비 골목의 경우 메뉴를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 입맛에 맞추는데 집중한 터라 타격은 더했다.

업체의 잘못도 없지 않다. 춘천시민 이푸름(28)씨는 춘천 닭갈비가 전국에서 꼽히는 브랜드였으나 이젠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흔한 맛이 돼버렸다라고 말했다. 이는 소비자들 수요에 맞춘 변화와 노력이 없다는 뜻이다.

서울 명동의 한 유명 닭갈비집은 모짜렐라 천연치즈만을 활용하고 차별화된 소스 맛을 연구하는 등 식재료의 차별화를 통한 메뉴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이 외에도 김치와 치즈를 조합한 김치치즈 닭갈비, 해물을 튀겨 닭갈비와 치즈를 곁들여 먹는 해물치즈 닭갈비와 새우치즈 닭갈비 등 새로운 맛과 비주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겨울철을 대비해 식사와 술안주로 겸용할 수 있는 국물닭갈비와 닭발닭갈비도 출시했다. 정작 닭갈비의 고장인 춘천에선 보기 힘든 다양한 메뉴들이다. 시끌벅적하고 칙칙한 분위기 역시 옛 얘기다. 까페 같은 세련된 인테리어의 닭갈비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

춘천의 닭갈비·막국수 시장은 날이 갈수록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줄고 있지만 이웃 동네 화천의 산천어축제는 이와 대조적이다. 이 축제는 매년 흥행을 이어가며 세계적인 겨울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올해는 역대 최고인 173만명을 돌파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춘천 닭갈비·막국수 축제 참가자의 무려 15배다. 이는 지역브랜드인 산천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업체들과 지자체의 동시다발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업소들은 자체적으로 바가지요금 근절과 친절 서비스 제공 캠페인을 벌이며 소비자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했다. 화천군 역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축제장 프로그램 체험 시 요금의 절반가량을 농특산물 교환권이나 화천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줬다. 현금과 다름없는 화천사랑상품권은 전량 화천 시내 음식점과 카페, 주유소, 숙박업소 등에서 사용됐다. 뿐만 아니라 관광객 조성을 위해 야간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얼음낚시장과 실내얼음조각광장 등을 조성하기도 했다.

화천산천어축제가 불황기에 허덕이는 춘천의 닭갈비·막국수 시장에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춘천 닭갈비·막국수 시장도 이젠 고인물에서 벗어나 현대 트렌드라는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시 자체의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춘천 닭갈비·막국수가 경제 불황을 딛고 지역 대표브랜드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시와 업계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송태화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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