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작] 에세이 ‘고기로 태어나서’ 리뷰
[나의 인생작] 에세이 ‘고기로 태어나서’ 리뷰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2.09.2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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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향에 가려진 ‘진짜’ 고기 이야기
사진=고기로 태어나서 표지. 출처=출판사 시대의창 공식 페이스북
사진=고기로 태어나서 표지. 출처=출판사 시대의창 공식 페이스북

우리 식탁 위의 고기는 빠지면 섭섭한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는 그런 고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 3학년 막바지에 이 책을 처음 열게 됐는데, 서문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게 뭔가 싶었다.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읽을지 말지 판단하라는 작가의 말 때문이었다. 잠시 망설인 순간도 있었지만, 고작 8페이지 만에 책을 덮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겼고 한승태 작가만의 흡입력 있는 문장은 사람을 단단히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누군가는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제목에서 채식주의의 향을 맡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가 직접 한국 식용 동물 농장 열 곳에서 일하며 담아낸 4년이다. 그는 육식 금지를 외친다거나 비건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저 노동이라는 행위로 ‘고기로 태어난 존재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 이 책은 맛있는 고기뿐만 아니라 힘쓰는 고기에게도 시선을 던진다. 이로써 우리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초대돼 지금까지 보지 못한 진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보통 에세이는 글쓴이의 생각·감정·견해를 주로 하는 글로 느껴진다. 노동 에세이인 「고기로 태어나서」 역시 작가가 작중 노동자로서 느끼는 당혹감·불만·만족 등이 드러난다. 그러나 한승태 작가는 조금은 특별한 글을 만드는 능력이 있었으니, 바로 날것에서 오는 리얼함이다.

그는 ‘르포르타주’로 현장을 전하며 이 책의 등장인물임과 동시에 전지적 소설의 해설자처럼 보인다. 작가는 노동자들의 외관과 성격은 물론 공간의 구조, 분위기 등 자신을 둘러싼 농장의 모든 것을 그려낸다. 특히 죽어가는 동물의 순간적인 눈빛이나 울음소리에 대한 묘사는 ‘읽는다’보단 ‘보고 듣는다’가 적절할 정도로 생생하다.

사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현장감은 책을 덮어버리고픈 욕망을 키워버릴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작중 ‘개의 경우’라는 챕터가 그러했다. 개가 전기로 지져지며 숨이 멎는 순간까지 비명을 지르는 도살 이야기는 읽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즉 최소 10번 이상 읽었다 말기를 반복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또 다른 현실이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부딪혀야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기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된 고기는 상품성이라는 판단 아래에서 학대 및 살해를 견디는 동물을 말한다. 이는 ‘맛있는 고기’의 영역이다. 동시에 이들과 함께하는 고기가 있으니, 작가는 그들을 ‘힘쓰는 고기’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평소 인지하고 있던 고기는 대부분 맛있는 고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힘쓰는 고기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몰랐던, 혹은 외면해 왔던 존재를 각인시킨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고기의 의미는 크게 1) 식용하는 온갖 동물의 살과 2)사람의 살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나뉜다. 힘쓰는 고기의 경우 후자에 해당하며 농장의 힘쓰는 사람, 노동자를 뜻한다. 최저시급도 못 받고 차별당하는 그들의 삶은 어쩌면 인간보다 고기에 가까울지도, 아니 ‘돈이 되는’ 고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우리는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고 있는가. 나보다 뒤 혹은 아래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 고기 정도로 인식해오진 않았는가. 부끄럽지만 누군가 필자에게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진정 모두를 인간으로 대했는가?’라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지 못할 것 같다.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끔찍하다거나 끝까지 볼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고기로 태어난 존재가 있고 그 고기를 만들기 위해 고기에 가까운 삶을 사는 이가 있는 한, 한 번쯤 직면해야 할 문제이다. 사실 수평아리 도살과 관련해 꾸준한 문제 제기와 법안 개정을 이어온 독일의 경우 올해부터 수평아리 도살금지법이 최초 도입됐다. 누군가의 마주함과 관심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발판이 된 셈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고개를 돌려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고기로 태어나서」는 외면되어온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현실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리를 한층 더 성장시킬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고윤주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뉴스작성기초> 수업의 결과물로 6월 16일 <사이드뷰>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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