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성을 배우다] 'n번방 방지법' 보도 재조명
[정파성을 배우다] 'n번방 방지법' 보도 재조명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2.07.2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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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은 2018년 하반기부터 텔레그램 n번방과 박사방에서 자행된 디지털 성 착취 사건을 말한다. 해당 채팅방 운영자들은 미성년자를 비롯한 일반 여성을 대상으로 성 착취 영상을 찍게 협박하며 이를 판매하는 끔찍한 범죄 행각을 저질렀다. 이 사건이 처음 수면 위에 올라왔을 때 인간성을 상실한 사건 경위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이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 ‘사이버 지옥’이 제작될 정도로 사건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사진=넷플릭스 다큐 '사이버 지옥'의 에고편 캡쳐. 출처=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다큐 '사이버 지옥'의 에고편 캡쳐. 출처=넷플릭스

정치권에서도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고자 ‘n번방 방지법’을 발의했고, 2021년 12월 10일부터 시행되게 되었다. 이 법안은 디지털 성범죄 분야에 있어서 이슈인 n번방 사건을 방지하고자 탄생했기에 이 또한 큰 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를 두고 언론은 두 가지 측면의 입장을 보였다. 보수 언론이라고 불리는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진보 언론으로 불리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차이가 잘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검열을 치켜세운 중앙, 조선 vs 진위 입증에 힘쓰는 경향, 한겨레

언론사가 보여주는 차이는 기사의 헤드라인만 봐도 알 수 있다. 먼저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헤드라인을 보면 ‘감시’, ‘검열’, ‘공포’란 키워드가 주가 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n번방 방지법을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보다 더한 민간사찰로 보며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헤드라인을 통해 드러냈다.

조선일보의 “정부, 오늘부터 단톡방 영상 검열 시작…고양이 사진도 걸리더라”와 중앙일보의 “n번방 방지법 李·尹 충돌…자유 한계있다 vs 검열 공포”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이러한 헤드라인은 법안의 이름을 ‘전국민 감시법’이라 재정의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강력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헤드라인은 결이 달랐다. n번방 방지법은 사전검열이라는 의견에 반대하며 이를 입증하는 내용의 헤드라인이 주를 이뤘다. ‘n번방 방지법이 사전검열이라는 것이 틀린 이유 3가지’, ‘검열법이라 몰고 가는’, ‘사전검열이 아닌 범죄 영상 필터링이다’ 등을 통해 법안을 사전검열이라 표현한 데 불쾌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국민의 힘’ 발언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또,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 힘’이 법안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남성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정치적으로 행동한 것이란 평가를 내렸다. 특정 키워드를 통해 법안의 타당성을 말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정치적으로 대응할 뿐임을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공통의 관심사 뒤에서 드러나는 언론의 정파성

네 개의 언론사가 공통으로 다룬 내용도 있었다. n번방 방지법은 ‘연매출액 10억원 이상 또는 일 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 인터넷 사업자가 콘텐츠 유통 시 불법 촬영물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도록 규정한 법이다. 그렇기에 대표적인 SNS인 ‘카카오톡’의 그룹 오픈채팅 기능이 이에 해당한다. 법안이 시행된 후 인터넷 커뮤니티는 법안 실효성을 두고 들끓었다. 시작은 국민의 힘 윤석열 당선인의 고양이 사진 검열 제보로 시작됐다. 언론사는 이 논란을 공통으로 다루면서 언론사마다 정파성을 따라 뒤에 따라오는 내용을 달리했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불법촬영물 필터링 조치에 대한 허점을 드러내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영상물을 분석한 뒤 정부가 모은 동영상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불법 여부를 식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막상 필터링 되는 콘텐츠는 유명 만화가의 작품이고, 선정적인 사진은 필터링 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아 ‘설익은 기술’이라 말하며 실효성에 대해 비판했다. 또, 헌법 조항과의 비교를 통해 n번방 방지법을 ‘사전검열’이라 말하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n번방 방지법 논란에 대한 쟁점과 진위 판단에 초점을 두었다. 이 같은 논란이 생긴 이유를 필터링 기술을 ‘검열’로 오인한 데서 비롯한 오해이고, 표심을 얻고자 검열법이라 몰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반박했다. 더불어 논란의 시작인 고양이 사진 테스트 결과를 공유하며 필터링 기능 작동 과정엔 문제가 없음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통해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입증’에 초점을 두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반영했는가의 차이

코멘트적인 부분에서도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의 “n번방 방지법은 질적으로 텔레그램 등에 적용이 어려워 실효성이 떨어지고, 통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재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말을 인용해 n번방 방지법이 실패한 법안임을 강조하며 마지막에 재개정 추진 언급하며 그 힘이 실리도록 구성했다.

반면에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IT 업계 관계자의 “필터링 기능을 검열로 규정하기엔 이미 다수의 플랫폼이 유사 기능을 사용 중이며 오히려 이런 논란을 통해 정치권에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을 인용해 필터링 기능과 검열의 차이를 부각하는 동시에 정치권이 이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게끔 했다.

정파성이란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 다양한 시각을 보유해야

그동안은 각 언론사마다 어떠한 정파성을 띠고 있는지만 알고 있었을 뿐 이를 비교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눈길이 가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보거나 보기에 깔끔하게 구성된 기사 하나를 뽑아보기만 해서 이렇게 같은 사안을 두고 정파성에 따라 기사의 흐름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같은 사실을 두고 다르게 담는 '분명한 차이'를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정파성이 담긴 기사는 사람의 관점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기존의 생각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그만큼 물살이 세다는 것이다. 선호하는 정당의 성향을 띤 기사만 찾아본다면 그 인식 안에 고립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기에 정파성이란 거대한 물살에 쉽게 떠내려가지 않는 다양한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혜윤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뉴스작성기초> 수업의 결과물로 5월 26일 <사이드뷰>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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