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부동산 대책은 후대에 부담”
“설익은 부동산 대책은 후대에 부담”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2.07.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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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문집 중 '한국의 아파트와 미국의 이라크' 전문 게재

부동산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여론의 관심 목록에서 늘 변함없이 상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지난 23일 별세한 조순 전부총리의 9촌 증손주인 한림대 미디어스쿨 조중만 객원기자가 경제학 이론서의 ‘바이블’로도 불리는 ‘경제학원론’의 저자이자 노태우 정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증조부의 ‘조순문집’에서 증조 할아버지의 부동산 정책 시각이 담긴 글을 찾아내 한글 문서로 작성, 보내왔다. 집필 시점과 현재의 한미 정세 등 달라진 점이 있지만 여전히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판단, 게재해 본다. <편집자주>

사진=조중만 대학생기자 소장하고 있는 '이 시대의 희망과 현실, 조순 문집'
사진=조중만 대학생기자 소장하고 있는 '이 시대의 희망과 현실, 조순 문집'

한국의 아파트와 미국의 이라크

중국, 인도를 비롯한 많은 나라의 주요 도시에서 아파트 값이 뛰고 있다. 나라마다 양상은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한국의 수도권 아파트 문제는 오랜 세월을 두고 견고한 뿌리를 내린 복잡한 문제이며, 그 바닥에는 나라 경제 전체의 모순이 깔려 있다. 일각에서는 아파트 값을 잡지 못한다면 내년 대선은 하나마나라고 한다. 아파트共和國(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압록강의 發源(발원)이 백두산 天池(천지)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듯이, 우리나라 아파트 문제의 발원을 찾기는 비교적 쉽다. 그러나 압록강이 바다로 흐르는 동안 별의별 물을 다 모아서 큰 강을 이뤘듯이, 아파트 문제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제사회의 온갖 문제를 다 모아서 복합적인 문제 덩어리로 자란 것이다. 한두 가지 단선적인 처방으로 치유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流動性(유동성) 증가와 인플레 심리, 인구 및 경제활동의 수도권 집중, 금융의 낙후와 직접금융의 미발달, 교육 평준화와 학군제, IMF 이후의 저성장과 양극화, 저금리정책과 주택담보대출의 정착, 택지개발에 관한 토지개발공사, 주택공사 등의 불투명한 관행, 행정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의 지정과 전국적인 땅값의 상승, 정부정책의 상호모순 등 많은 문제가 복합되어 있다.

경기가 좋아진 것도 아니고 집 없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났을 리도 없는데도 수도권의 아파트 값은 쉴 새 없이 올랐다. 보유세, 거래세 등 중과세를 부과하는데도 오름세는 더욱 거셌다. 사람들은 정부의 무능을 힐난하면서 당장 손을 쓰라고 다그친다.

다급해진 정부는 부랴부랴 임시방편 처방을 내놓는다. 이 과정을 여덟 번이나 반복한 후 정부는 이번에는 극단적인 공급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이 아파트가 세워지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숨고르기를 하면서 관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의 終末(종말)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문제의 始發(시발)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가격이 한꺼번에 떨어져도 곤란하다. ‘자산 디플레’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가격 인플레보다 더 큰 문제이다.

한국의 아파트와의 전쟁은 미국 부시정부의 이라크 전쟁과 비슷한 면이 있다. 첫째, 두 ‘전쟁’의 뿌리가 깊다. 둘째, 전쟁의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확실치 않다. 상대방에는 山戰水戰(산전수전)을 겪은 게릴라 부대가 많아서 正規軍(정규군)을 가지고 이기기가 힘들다. 셋째, 전쟁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도 확실치 않다. 하나의 목표가 달성되기도 전에 또 생소한 목표가 등장하여, 전쟁의 양상은 자꾸만 달라진다. 넷째,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무엇인지, 我軍(아군) 사이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다섯째, 아군의 지도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지도부의 임기마저 가까워지고 있다.

마침내 미국은 이라크전의 최종 단안을 내리기 전에 전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로 하여금 전직 야당 의원을 포함한 ‘이라크 연구그룹’을 만들어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36計(계) 중 가장 좋은 생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종의 냉각기간을 설정하여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아파트 연구그룹’을 만들어서 좀 더 유연한 마음으로 이 문제 해결에 임하면 어떨까. 물론 이 그룹도 즉효를 내는 묘방은 내놓기 어렵겠지만, 민심을 수람(收攬)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아파트문제는 단순한 아파트 가격 진정의 문제가 아니다. 온갖 경제문제에다가 교육, 사회 및 정치와 살벌한 국민심리가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이다. 더 이상 설익은 단선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은 큰 負(부)의 遺産(유산)을 후일에 남길 것이다.

조중만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The H 프로젝트> 수업의 결과물로 7월 4일 <사이드뷰>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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