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스포츠 산업 기지개, 다시 뜨는 ‘암표 거래’
공연·스포츠 산업 기지개, 다시 뜨는 ‘암표 거래’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2.06.2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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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원 짜리 표가 25만 원, 현장 적발 어려워... 윤리적 측면에서 사회합의 필요

코로나19 장기화로 움츠렸던 공연·스포츠 산업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온라인 암표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이에 대한 규제와 처벌을 두고 엇갈린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축구팬 정아무개(25)씨는 이달 진행되고 있는 축구 대표팀 평가전 티켓 예매를 시도했으나 피 튀기는 티켓팅, 이른바 '피켓팅'에 실패했다.

정씨는 취소표를 알아보던 중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라오는 암표들의 거래 가격에 눈살을 찌푸렸다. 경기장 내 육성 응원이 허용됨과 동시에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활약하는 손흥민 효과까지 더해져 암표 거래가 성행한 것이다.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와 번개장터를 살펴본 결과, 티켓을 사고파는 게시물이 수백 건 게시됐으며 많은 암표가 거래됐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브라질전은 7만 원짜리 2등석 S티켓이 24만 원에 거래됐다. 5만원짜리 2등석B 티켓은 15만 원에, 35만 원짜리 프리미엄A석은 100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사진=지난 2일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대표팀 브라질전이 열리기 전 70만원 가량의 프리미엄A 티켓이 200만원에 판매된 게시물.
사진=지난 2일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대표팀 브라질전이 열리기 전 70만원 가량의 프리미엄A 티켓이 200만원에 판매된 게시물.

암표들은 대체로 원래 가격의 3배 정도에 시세가 형성됐으며, 많게는 7배 값까지 치솟았다. "한국 브라질 경기 티켓을 구한다"며 "가격을 제시해달라"는 글이 올라오는 등 구매하려는 이들도 넘쳐났다.

법적으로 암표 판매는 금지돼 있다. 경범죄 처벌법에 따르면 경기장, 역, 정류장 등 정해진 장소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 및 승차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판 사람은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료에 처한다.

하지만 직거래 등 현장 거래 상황이 적발돼야 처벌이 가능할 뿐, 온라인 암표 거래는 단속하고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티켓을 판매하는 업계에서 규제하거나 관리할 수는 없을까. 중고거래 플랫폼 관계자는 "코로나 상황이 잦아들자 티켓 수요가 늘어났고, 암표가 성행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있다"면서도 "법적으로 규제하고 처벌할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적극적으로 단속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티켓을 구매하기 전 동의해야 하는 프로스포츠 암표 근절 이용 약관이 존재하긴 하지만, 현실에서 암표 거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20대 국회 당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이 온라인 암표 거래 방지를 골자로 한 '인터넷 티켓 싹쓸이, 암표 처벌법'이 발의되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윤리적 측면에서 사회 합의 우선돼야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암표근절법안을 둘러싼 의회 찬반 대립의 밑바탕에는 윤리 논쟁과 시장경제 논쟁이 깔려 있다.

만약 웃돈을 받고 판매하고자 티켓을 구매한다면 이는 국가적인 불법사항이다. 불법사항이니 비윤리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윤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게 올바른가'라는 의견도 나온다.

효도하지 않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논리와 같다.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관점에 입각해보자. 책에는 '줄서기 윤리'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먼저 온 사람들이 줄을 서 티켓을 갖는 것은 사회적으로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새치기를 비윤리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줄서기 윤리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표는 새치기가 아니라 자기가 투자한 시간 비용을 더해 다른 사람에게 그 기회를 넘긴다는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티켓 선점을 위해 '매크로' 같은 불법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례는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줄서기 윤리를 교란한다고 볼 수도 있다.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구매한다면 비윤리적이라고 소개한다. 이 각도에서 본다면, 티켓 자체는 본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고 시세가 본 가격보다 높게 형성되는 것은 '희소가치'라는 시장 논리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관점이 성립될 수 있다.

박보람 강원대학교 윤리교육학과 교수는 "티켓을 사서 되파는 행위는 팬심을 악용해 티켓을 구매할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에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대리로 줄서기를 시키는 것을 비윤리적 행위로 보는 것과 같은데, 이런 논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법적으로 규제를 가한다고 해도 처벌과 단속이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도 문제다. 박 교수는 "만약 법적으로 제재해도 막지 못한다면 범죄자만 양성하는 일이 될 수 있다"며 "윤리적인 측면에서 사회적 합의조차 쉽지 않은데 입법으로 암표를 막으려는 것은 성급한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은 암표 근절이 법적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윤리적 측면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티켓을 선점하고 고액으로 되파는 행위는 국가적으로 명백한 불법행위이고, 암표를 구매하지 않으려는 개인의 윤리의식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팽배하다.

한 축구 팬카페에서는 "사지 않으면 가격은 내려간다"며 암표를 구매하지 말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축구팬 이아무개(27)씨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판매하는 암표를 파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둘 다 불법행위를 행한 것"이라며 "결국 사지 않으면 암표도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광찬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The H 프로젝트> 수업의 결과물로 6월 16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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