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전선 취준생들, ”추락 방지 안전망이 필요해요”
취업전선 취준생들, ”추락 방지 안전망이 필요해요”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2.06.2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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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무기력감 등 노출 십상, 우울증 최다 연령층 ‘20대’
정신상담 지원 기능 강화돼야

서울 소재 대학의 자연계를 졸업한 민아무개(26·여)씨는 IT계열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정부에서 최대 190만원까지 월급을 지원해주는 ‘정부 지원 사업’ 회사에 6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그러나 민씨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입사했고 근무 기간중 사측이 “정규직 전환을 생각중”이라며 계속해서 재계약에 대한 의사를 밝혀, 당연히 재계약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이직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 측은 재계약 직전에 갑자기 말을 바꿨다. 정부 지원 사업이라 재계약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퇴사 통보를 받은 민씨는 “6개월 동안 빼먹고 버려진” 기분이 들었고 “내가 일을 조금만 더 잘했다면 잘리지 않았을까?” 등 갖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다시 일자리 알아보고 자소서 쓰는 것이 두렵고 의지도 안 생긴다”는 민씨는 “당장의 월세랑 공과금을 생각하면 죽고 싶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이 취업 시장에서의 실패 경험 반복으로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감의 위험에 쉽게 노출돼 정신상담 지원 등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우울증 진료 인원은 총65만1810명으로, 이 중 20대가 16.9%를 차지, 가장 많았고 60대가 16.5%로 뒤를 이었다. 국내 우울증 환자는 그동안 6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돼 왔지만 지난 2020년 20대 우울증 환자 수가 60대를 넘어섰고, 지난해 역시 같은 양상을 보였다.

20대 우울증 다빈도 현상은 "벼랑 끝에 내몰린” 취준생의 심리적 취약성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와 취업 후에도 사회 초년생으로 갖가지 난관을 겪으며 취약해진 20대의 사회 정신건강 수준 저하의 위험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된 심리 증상은 자타가 공격해오는 '패배자 낙인'과 '무기력함'이다. 소위 ‘인 서울’ 명문대 이공계열 졸업생 문아무개(27)씨는 취업 스트레스와 더불어 부모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이러려고 힘들게 대학 보낸 게 아니다. 빨리 취업해라”라는 부모의 말에 문씨는 1년 넘게 전공과 관련된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문씨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사실 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일인데.. 내 나이대의 취준생들은 한가지 길을 선택하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해온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고 그럼 정말 실패자가 돼 버린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문씨는 자신을“패배자”, “쉴 자격도 없는 놈”이라 칭하며 스스로 패배자 낙인을 찍으면서도 수시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내비쳤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계속되면 화가 난다. 그 모든 화를 나한테 돌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내 말과 행동, 모든 일에 확신이 없고 내 안에 중심이 잡히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진단하기도 한 문씨는 이날 자신의 말을 수차례 번복하고 일관성 없는 대답을 하는 등 불안정한 상태를 보였다.

취업 시장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취준생들은 당장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알코올에 의존하는 현상도 보인다. 20년도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박아무개(28여)씨. 예술계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박씨는 졸업 후에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었다. 오디션 10곳에 지원하면 3곳에서 연락이 올까 말까다. 근데 그 3곳도 코로나 때문에 공연 자체가 아예 무산됐다.

많은 청년들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도전의 기회를 박탈당했지만 박씨는 코로나로 인한 실업 문제조차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내가 코로나 핑계를 대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닌가. 이렇게 아무 성과도 없이 코로나가 끝나버리면 어쩌지?”하는 만성화된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취업을 아예 안 해본 건 아니다. 지난해 6월, 공고사이트에서 배우 오디션을 보고 극단에 입단했다. 그러나 공연의 성격과 본인이 맞지 않았고, 집단 내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경제적 이유로 3개월 만에 하차했다. 극단에서 나온 박씨는 자신을 “패배자”, “3개월짜리 인간”이라며 자책했다. “알바든 취업이든 다 3개월까지 버티고 그만뒀다. 그러다 보니 내가 3개월짜리 사람인가? 뭘해도 안 될 것 같고 벼랑 끝으로 떨어진 기분이다"고 말했다.

박씨가 당장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술이었다. 한 달동안 매일 밤 소주 1병씩을 먹은 결과, 바깥 활동이 불가능해졌고 실패의 경험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매일 밤 본인 탓을 하며 술을 마시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박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 정신과 상담을 3차례 받았다. 단절된 인간관계로,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핸드폰 너머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으니 밖으로 나올 조금씩 의지가 생겼다. “상담을 받기까지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가족의 도움으로 정신과 문턱을 넘을 수 있었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고립된 청년들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쉽지 않을거다”고 전했다.

실패에 냉정한 사회. 패배자로 낙인찍는 사회.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실패를 거듭하며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끊임없이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고립시켜 결국 사회와 단절된다.

실패에 대해 청년 스스로 보다 유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상담지원 기능 강화 등 사회적 안전망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고층 건물에, 한강 다리에, 지하철 역에 추락 방지를 위해 설치한 안전장치처럼 취업 전선에서 쓰러지는 다수의 청년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어, 청년들이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사회환경을 가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강수빈 객원기자

* "지금의 기사는 <로컬뉴스공급캡스톤> 수업의 결과물로 5월 30일 <사이드뷰>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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