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선] 한국 사회 무시와 차별, 방치하면 안 된다
[청년시선] 한국 사회 무시와 차별, 방치하면 안 된다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2.04.13 08: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인권위에 올해 2개월간 120건 진정…성·장애·신분 탓 무시·차별 호소

이달 초 강릉 옥계와 동해 일대 산림 방화사건이 발생,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과 함께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 피해를 냈다. 옥계 산불의 원인은 방화범 A(60)씨가 부탄가스 토치를 이용, 자신의 집과 주민들의 저택에 불을 지른 것이 산림으로 옮겨붙으며 일어났다. 자신의 80대 모친까지 사망한 큰 산불로 이어진 주택 방화의 원인에 대해 A씨는 동네 주민들이 자신을 “몇 년째 무시해서”라고 말했다. 검찰 역시 ‘적대감에 의한 계획적인 범죄’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2016년 5월에는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던 피의자에 흉기로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의 범인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범죄 동기를 털어놨다. 인명과 막대한 재산피해를 낸 두 사건의 범인은 모두 “무시”를 당한 것에 대한 복수심의 표현이라는 공통된 범행 동기가 작용했다.

한림대학교 심리학과(법·범죄 심리학)의 이정원 교수에 따르면, 특히 강남역 살인 사건의 경우, 조현병 증상의 하나인 피해망상이 여성 혐오와 결합, “여성이 나를 무시한다”는 병적인 생각과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무시’는 다른 사람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될 때 느끼는 ‘차별’과 동전의 양면으로 간주된다.

극단적인 비극을 초래한 위의 사례들은 배제한다 하더라도 ‘무시’와 ‘차별’이 낳는 사회적 부작용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진=차별 진정사건 사유별 처리현황 표 중 일부 캡쳐. 출처=국가인권위원회
사진=차별 진정사건 사유별 처리현황 표 중 일부 캡쳐. 출처=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월말 현재 ‘무시당하고 차별받았다’는 진정 사건은 총 120건이 접수됐다. 성적인,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과 무시가 순서대로 많았다. 비단, 병적인 행동으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초래하는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시’와 ‘차별’의 부작용이 얼굴 없는 피해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무시’를 당하면 인간의 심신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이 교수에 따르면 무시나 차별을 받게 되면 분노나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한다. “신체적으로는 맥박이 빨라지거나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고 뇌에서도 기억 및 사고에 관여하는 전전두엽(prefrontalcortex) 부분인 좌측엽의 기능이 저하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 기능이 저하되면 합리적인 판단에 기반해 의사결정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즉, 뇌 기능 저하, 맥박 및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로 분노 행동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변화로는 기분이 나쁘다에서 불쾌감, 우울감, 불안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더 나아가 트라우마로까지 남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분노감 증대와 차별 현실을 부정하는 감정 등이 생길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자아감, 자아존중감의 손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교수에 따르면, 이런 무시와 차별을 당한다는 감정은 "단순히 부정적 언사에서 비롯된다기 보다, 자기의 존재 자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지위가 부정되는 상황,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참여를 부정당할 때” 느끼게 된다. 또, “사회적·문화적·제도적으로 인정받고자 시도되는 상호작용이 거부될 때” 이 감정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사회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독버섯과 같은 이 무시와 차별에 대체해야 할까. 우선, 내가 먼저 차별, 혐오표현이 될 수 있는 단어를 인지하고,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관련, 김해문화재단에서는 문화다양성 캠페인의 일환으로 '말모이 혐오표현 카드'를 만들어, 세대와 성, 장애인 등 각 분야별 혐오·차별성 단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심리적 대응 방법도 있다. 이 교수는 “무시와 차별의 상황에서 벗어나 그 상황 자체를 인지적으로 재구성하는” ‘인지적 재평가’ 방식을 제시했다. 또, 한림대학교 심리학과 임선영 교수는 무시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 자신의 감정을 건강히 표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먼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잘 알아차리고 ‘나’를 주어로 사용, “나는 ~해서 지금 내 마음이 어떠하다…그러니 이해해줄 수 있을까? ~요청을 들어줄래?” 와 같은 방식으로 건강하게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강릉 옥계 산불 방화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에서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런 심리적 차원의 대처 이외에도 사회기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장애·성별·나이 등으로 인해 차별 행위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전화 상담이나 방문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진정서를 제출할 수 있다. 진정서가 접수되면 위원회는 심의 후 권고, 기각, 각하, 이송 등의 의결을 해 당사자에 통보한다.

5일 오후 12시, 국회 앞에 설치된 차별금지법연대 집회 현장(출처: 한국여성민우회)
지난 5일 오후 12시, 국회 앞에 설치된 차별금지법연대 집회 현장(출처: 한국여성민우회)

이처럼 이미 마련된 국가적 조정 절차와는 별개로, 자칫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무시’와 ‘차별’을 제도적으로 막아보려는 움직임도 존재해왔다. 수년째 법 제정이 추진돼온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이를 추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같은 단체가 그 예이다.

장혜영 의원이 지난 2020년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따르면, 이 법은 정치·경제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헌법상의 평등권을 보호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이 법의 제정 촉구를 위해 ‘차별을 끊고 평등을 잇는다 ’는 슬로건 아래 2022인 릴레이 단식행동 ‘평등한끼’를 지난달 14일부터 오는 8일까지 진행중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두고 피켓팅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연대 참여자들 (사진1), 국회 앞에 설치된 차별금지법 연대 현장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사회자의 모습(사진2)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차별금지법 제정'을 두고 피켓팅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연대 참여자들 (사진1), 국회 앞에 설치된 차별금지법 연대 현장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사회자의 모습(사진2)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이런 활동들이 지속이 된다면 사회적인 관심을 모아 무시나 차별을 줄이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며 "사회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사람들 인식이 변화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인 규범이 되고 합의가 이뤄지는 상황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현·김주연·이선재·임혜린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The H 프로젝트> 수업의 결과물로 4월 7일 <사이드뷰>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