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과몰입' 부추기는 기업, 이대로 괜찮을까?
'MBTI 과몰입' 부추기는 기업, 이대로 괜찮을까?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1.12.15 09: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리유형과 “맞는” 제품 유도…특정 MBTI “우대” 채용, 취준생 부담가중도

직장·연애 등 일상의 주요 영역을 심리유형 검사인 MBTI를 통해 해석하려는 소위 ‘MBTI 과몰입’ 현상이 MZ세대에서 유행하는 가운데 기업도 이를 마케팅 등에 남용, ‘MBTI’ 과잉 현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 검사 취지와 달리 개인의 특색을 말살하는 사회적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MBTI 열풍이 불자 기업들은 ‘MBTI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심리 검사를 이용, 기업의 브랜드와 제품을 홍보하는 것으로, 심리 검사 후 참여자의 MBTI와 어울리는 자사 제품을 추천하거나 온라인 판매망으로 유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인테리어 앱 ‘오늘의 집’이 개설한 ‘전생 집 테스트’가 그 한 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 당신은”이라는 제시문과 함께 “친구와 만나서 힘들었던 일들을 다 털어낸다”나 “집에서 좋아하는 영화/드라마를 정주행한다”와 같은 2개 선택항의 질문들에 대한 선택이 끝나고 나면, ‘단독 럭셔리 동굴’,‘황금범벅한 궁전’,‘뷰 맛집 오두막’과 같은 자신이 전생에 살았을 집을 알려주는 식이다. 이런 이벤트 덕에 ‘오늘의 집’은 웹 트래픽이 증가하면서 온라인 인테리어 제품 판매 사이트의 쏠쏠한 마케팅 효과를 창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세계인터내셔날 자주(JAJU)는 올초 ‘일상재질 테스트’ 코너를 만들어 약 3주 동안 총 25만여 명이 온라인 테스트에 참여하는 등 성과를 냈다. 그 덕에 온라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6%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테스트에 참가한 사람의 80%가 2030세대라는 점이다.

‘MBTI 과잉’ 현상은 마케팅 뿐 아니라 채용에서도 일자리가 필요한 MZ 세대를 옭아매고 있다. 9만6천명 회원을 보유한 네이버 ‘MBTI&HEALTH’ 카페에서 한 회원은 “회사 면접에서 MBTI 검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회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유형, 싫어하는 유형이 뭘까요? OOTJ를 제일 좋아할 것 같긴 하네요”라고 글을 게재했다. 이 밖에도 “면접 자리에서 MBTI 무슨 유형인지 물어보는 면접관 이해되시나요?”라는 게시물이 올라오는 등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MBTI를 묻는다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에 올라온 MBTI 관련 구직 공고 내용. 사진=잡코리아.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에 올라온 MBTI 관련 구직 공고 내용. 사진=잡코리아 캡쳐.

실제로 취업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채용 공고를 둘러보면 특정 MBTI를 우대한다는 글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모 종합식품 기업 또한 올해부터 신입사원 채용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MBTI 유형을 소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사례를 들어 소개하시오’라는 항목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MBTI 유형을 선호한다는 채용 공고문. 사진=잡코리아
특정 MBTI 유형을 선호한다는 채용 공고문. 사진=잡코리아

이에 대해, 김판수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채용 과정에서 MBTI를 반영하는 것은 기업이 누군가를 뽑을 때 이제 성격까지 관리하겠다는 의미”라며 “‘(취준생인) 네가 선호 받는 MBTI로 바뀌어라’ ‘이런 성격이 아니면 이런 성격이 되게 만들어라’ 등 사람을 일원화시키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또, “기업이 회피하는 MBTI를 가진 사람들을 문제로 여기게 된다면 이것은 사회적으로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기업이 채용 기준에 MBTI를 활용하기 시작하자 취준생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채용 시장에 부담의 가중을 호소한다. 취업준비생 배모(26)씨는 “인터넷을 둘러보다 내 MBTI가 직장 내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글을 읽으면서 내가 직장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순간 위축이 됐다. 기업에서 점점 MBTI를 보는 경우가 늘고 있으니, 심지어 면접 때 내 MBTI를 물어보면 ‘흔히 사람들이 선호하는 MBTI라고 거짓말을 해야 하나’ 고민도 해봤다”고 토로했다.

MBTI가 과연 기업에서 취준생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척도가 될 수 있을까? 오충광 한림대 상담센터 교수는 “MBTI의 신뢰도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지만 학문적으로는 아주 신뢰할만한 검사라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다소 있다”고 말했다. 또, “MBTI는 기본적으로 나 자신이나 상대를 이해할 때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임에도 불구하고“많은 것들을 MBTI로 환원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겼거나 우울해서 혼자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내 MBTI가 이래서 이렇구나’라고 스스로, 혹은 주위에서 개인의 경향성으로 해석해 버리면 또 다른 부정적인 여파로 이어질 수 있다”며 ‘MBTI과잉’현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민 대학생기자

* "지금의 기사는 <헬스저널리즘> 수업의 결과물로 12월 6일 <사이드뷰>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