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2)씨는 남자친구의 잦은 공격적 언행이 불편해져 “헤어지자”고 했지만 술을 먹고 운전, 자취방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자살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등 점점 괴롭힘이 심해지고 있다. 1년 넘게 사귀고 있는 이 남자 친구는 A씨가 친구들과 가진 생일 축하 자리에도 불쑥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등 A씨 일상 전반을 점점 옥죄어 오고 있어 이제는 아예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가해자 처벌, 피해자의 심리지원 치료 등 후속 조치는 미미해 사회적 대응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만8954건이던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올해 7월까지만 해도 지난해 1년치를 훌쩍 뛰어 넘은 2만4481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런 데이트 폭력의 급증세에도 사회적 대응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모양새다. 우선 법적인 처벌 수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신고 건수 대비 검거율은 지난 2016년 96%에 달했던 것이, 2017년에는 81%, 2018년 61%, 2019년 56%, 2020년 52%로 점점 감소세를 보였다. 게다가 지난해까지 5년간 구속된 인원은 2007명으로 전체 데이트 폭력 입건 대상 중 4.2%에 불과하다.
춘천의 한 대학교에 재학중인 B(22)씨는 남자친구가 술만 마시면 돌변하는 케이스. 술자리에서 연인이 아닌 이성의 친구를 의미하는 ‘남사친’에게 연락이 와 답을 하면 “나말고 다른 남자가 필요하냐, 내 앞에서 다른 남자와 연락을 하는 게 말이 되냐”고 화를 내며 B씨의 핸드폰을 집어 던지는가 하면, 손찌검을 할 기세를 보이기 일쑤다. B씨는 이제 "친구들이 손만 들어도 움찔해지고 비슷한 체격의 남자를 보면 어느새 피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서경현(삼육대 심리상담학과)교수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는 소유욕과 질투심 혹은 타인을 원망하는 심리가 강하거나, 욱하는 성질이 있고, 술이나 약물을 강요하는 등 유사한 성향을 보인다. 이에 반해, 피해자의 경우, 대체로 “상대방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있거나 자신이 무기력·무능력하다고 느끼며, 상대를 쉽게 받아들이는 공통된 속성을 보인다”고 말했다.
서교수는 “이들은 대개 자신이 처한 상황이 데이트폭력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는 데이트폭력이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것도 아주 드문 데다 이 피해상황을 인지하고 심리적 지원을 구하는 상황은 더더욱 희박한 현실임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춘천가정폭력•성폭력 상담소 허애경 소장은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소장은 “112에 신고하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피해자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라며 “가까운 이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상담소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전문적인 조언과 함께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하는 것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허소장은 만난 지 3개월 된 남자 친구가 성격이 안 맞는 것 같아 헤어지자고 했더니 자꾸 죽어버린다고 위협, “정말 저때문에 죽을까봐 불안해요”라고 하소연하던 한 피해자도 상담을 꾸준히 받으며 현재 안정을 찾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성 친구의 폭력적 언행에 시달리는 여성은 ▲한국여성의전화여성인권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성폭력상담소 ▲장애여성공감성폭력상담소 ▲서울1366로 연락해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임채린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