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나] 씽크홀(sink hole)일까 띵크홀(think hole)일까
[미디어와 나] 씽크홀(sink hole)일까 띵크홀(think hole)일까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1.02.2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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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미디어와 나]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뉴스작성기초1 수강생들이 수업을 통해 1. 나와 미디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디어 영역의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추천하는 글입니다.

텅 빈 병원의 점심시간, 한 간호사가 남자친구와 몰래 성관계를 맺다 누군가의 실수 혹은 의도로 인해 관계 장면이 엑스레이로 찍히며 영화는 시작된다. 병원 사람들은 ‘찍은’사람 보다 ‘찍힌’사람이 누구인지 추궁해가며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를 찾는 자극에 이끌리게 된다. 주인공 윤영은 이러한 상황에 회의를 느끼며 동시에 본인을 의심하는 병원장 영진과 함께 의심에 의해 쓰러져가는 병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윤영은 영진에게 직원들을 향한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꾸준히 강조하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남자친구 성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

페미니즘의 도래 이후 ‘구원은 셀프’라는 문장이 자주 쓰인다. ‘One is one's own refuge, who else could be the refuge? 스스로가 자신의 구원이다. 그 누가 스스로의 구원이 될 수 있겠는가?’ -What the Buddha Taught, Walpola Rahula(1959)에서 유래한 말인데, 페미니즘에서 저 문장은 여성들이 여성혐오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의 간섭이 아닌 오롯이 본인의 의지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 메기는 씽크홀을 상징으로, 여성들이 데이트폭력이라는 여성혐오 속에서 스스로 구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경쾌한 인권영화이다.

영화 '메기'의 공식포스터. 사진=네이버영화
영화 '메기'의 공식포스터. 사진=네이버영화

구원은 셀프라는 페미니즘의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 싱크홀을 소재로 사용한 것은 이옥섭 작가의 천재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들 중 하나다. 이옥섭 감독은 평소에도 밧줄, 음료수 캔, 선풍기 등 다양한 상징물을 통해 사회적 이슈나 인권문제 또는 인간관계 등을 표현하고, 관객 스스로 상징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메기 속 상징물인 싱크홀은 여성혐오와 폭력으로 무장되어 있는 성원의 구덩이를 넘어, 사회에 존재해있는 여성혐오적 남성들의 구덩이를 의미한다. 이때 영진의 좌우명이자 영화의 명대사가 싱크홀과 영화 전체의 스토리를 한 번에 압축한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즉, 애인이나 남자친구에 대한 믿음과 정에 연연해 폭력의 이유나 상황을 정당화하고 계속해서 구덩이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싱크홀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앞으로의 복선을 말해주는 장면. 사진=네이버영화

싱크홀은 이외에도 데이트 폭력에 대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 속 성원은 시내의 싱크홀을 메꾸는 일일 노동자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성원은 싱크홀을 만드는 존재임과 동시에 싱크홀을 덮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원은 아무렇지 않게 폭력이라는 싱크홀을 만들고, 여기서 벗어날 수 없도록 계속해서 싱크홀을 덮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 성원의 전 여자친구는 스스로의 구원을 통해 성원의 싱크홀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점에서 싱크홀은 단순히 가라앉다의 sink가 아닌 생각의 think로 탈출 유무를 결정할 수 있는 곳이라 유추해보았다.

메기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주제를 담았다고 해서 기존의 독립영화나 인권영화처럼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이옥섭의 영화가 독립영화 중에서도 특히 매력적인 이유는 경쾌한 인권 영화이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들에게 독립영화나 인권영화는 경건하고 청렴한 마음을 가지고 봐야 할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을 주지만 이옥섭의 영화들은 대부분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경쾌하고 신난다. 하지만 경쾌하다는 것이 그저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옥섭 영화 속 캐릭터들의 독특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캐릭터라 하면 영화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는 ‘메기’이다. 인간이 아닌 메기의 시선으로 사건을 전개함으로써 사회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집중하는 시선에 대해 관객 스스로 회의를 느끼게 한다.

메기의 독특함은 ost에서도 드러난다. 이옥섭은 10년 전부터 유튜브에 간간이 영상을 업로드하는데 영상의 주제나 연출에 대한 칭찬도 많지만 ost에 대한 극찬도 과반수를 차지한다. 이옥섭의 오래된 연인이자 공동 창작물을 만드는 배우 겸 감독 구교환은 좋아하는 노래를 사용하고 싶어 영화를 만들 때가 있다 할 정도로 둘 다 ost에 대한 애정이 크다. 때문에 영화는 단순히 시각적 요소 외에도 음악적 부분에서 풍부한 감동과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메기 ost는 슬프거나 괴로울 때도 경쾌하고 빠른 박자의 노래를 사용한다. 이질감이 느껴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기하게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슬픔과 고통을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이옥섭은 상황과 대조되거나 예상치 못한 음악을 사용하여 영화의 흥미를 높인다. 특히, 윤영이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임을 스스로 인지하기 시작할 때부터 흘러나오는 빠르고 경쾌한 드럼 소리는 초조해지는 윤영의 마음만큼이나 관객까지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준다.

하지만 이 긴장감은 여성에게 단지 긴장만으로는 남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은 메기를 보고 난 뒤 느껴지는 공허함과 허탈함 그리고 또 다른 의지 등 다양한 슬픔과 용기의 부조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페미니즘의 등장으로 사회가 이전보다 여성혐오에서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데이트 폭력 같은 일상 속 혐오범죄는 꾸준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미디어는 이를 오히려 과격한 사랑으로 포장하기도 하며, 데이트 폭력 같은 범죄 사건도 피해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자극적이게 전개하기도 한다. 이처럼 폭력을 순응하게 만드는 미디어 사회에서 이옥섭의 메기는 폭력 속에서 생존하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미디어다. 메기는 성관계를 몰래 찍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가하는 모든 상황에서 가해자는 남자친구, 여자친구, 애인이 아니라 그저 가해자 일뿐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준다. 즉, 피해자는 움츠러들 필요 없이 가해자는 가해자일 뿐 우리는 어서 그 구멍만을 빠져나올 노력만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구덩이에서 허덕이는 여성들을 위해 이 세상에는 이옥섭 감독의 메기라는 미디어가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 파란빛의 영상미에서도 여성들을 안아주는 따뜻한 영화, 메기의 소개를 여기까지 마치겠다.

최윤지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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