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영화]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 두 영화
[영화와 영화]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 두 영화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1.02.05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귀향’과 ‘아이 캔 스피크’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책, 다큐, 영화, 드라마, 실존하는 문화재나 유적지 등 수많은 방법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단연 영화다. 영화를 통한 역사의 인식은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통해 역사 속 사건을 순차적으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배우의 연기와 시대적인 배경을 구현한 세트, 장소는 그날의 생생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선호하는 방법이다. 영화적 요소가 가미되어 역사를 왜곡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사건을 찾아보며 왜곡된 부분을 걸러내다 보면 오히려 더욱 정확한 역사를 알게 되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 가장 많이 관심 가졌고 사후 정확한 역사 인식을 위해 가장 노력했던 두 편의 영화를 두고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여기 가장 비슷하지만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편의 영화 <귀향>과 <아이 캔 스피크>가 있다.

<귀향>은 2016년 2월 24일 개봉작으로 1943년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차디찬 이국땅에 놓이게 된 열네 살 ‘정민’(강하나)과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 실화 기반의 영화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촬영까지 14년이 걸린 우여곡절의 영화로 유명한 <귀향>은 7만5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후원(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대부분의 제작비를 마련했다. 개봉 전 세계 각국에서 진행된 후원자 시사회는 한국의 아픈 역사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1년 7개월 뒤인 2017년 9월 21일 <아이 캔 스피크>가 개봉했다. 20년간 8천 건이 넘는 민원을 넣은 할머니 ‘나옥분’(나문희)이 구청 공무원 ‘박민재’(이제훈)에게 영어를 배우며 밝혀지는 옥분의 가슴 아린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나문희와 이제훈의 캐미, 후반부의 반전이 입소문을 타며 개봉 일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달성했고 추석 가족영화로 자리매김하며 328만 관객으로 막을 내렸다.

<귀향>의 조정해 감독과 <아이 캔 스피크>의 김현석 감독이 추구하던 영화의 장르는 많이 달랐다. 먼저 <귀향>의 조정래 감독은 <두레소리>, <파울볼> 등의 작품 연출한 감독으로 학창시절 ‘나눔의 집’ 봉사 활동을 하며 <귀향> 제작을 마음먹게 되었다. <귀향> 이후에도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에움길> 등을 제작하며 절대 멈춰서는 안 될 우리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아이 캔 스피크>의 김현석 감독은 <쎄시봉>,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의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다. 입봉작인 <YMCA 야구단>을 시작으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필모에 전반적으로 작용하는 김현석만의 시선이 있다. 그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빚어내는 극과 극 휴먼코미디 장르를 꾸준히 구축해왔다. 8천 건이 넘는 민원 왕 ‘나옥분’(나문희)과 원칙주의자인 구청 공무원 ‘박민재’(이제훈)의 넘치는 캐미를 보면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그의 시선은 여과 없이 발휘된 것을 알 수 있다.

두 영화는 모두 ‘일본군 위안부’라는 소재를 사용했지만, 그 연출방법과 전개기법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귀향>은 과거회상을 통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세세하게 전달하는 부분에 주목했다. 반면 <아이 캔 스피크>는 전체적으로 코믹한 영화 사이에 무거운 소재가 잘 스며드는 전개를 만들어나갔다.

<귀향>은 포스터와 제목에서부터 풍겨오는 향기가 벌써 시리고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영화라는 게 느껴진다. 영화의 연출 또한 위안부의 아픔을 잊지 못하고 살아온 ‘영희’(손숙)의 회상이 주를 이룬다. 씻김굿을 통해 ‘은경’(최리)에게 어린‘미정’(강하나)이 들어오며 ‘영희’와 만나게 되는데 이는 특정한 사물(괴불 노리개)을 매개로 현재와 과거가 만나는 전개양상을 보인다. 차디찬 전장에 어린‘미정’을 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는 ‘영희’의 고백은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미안함의 절규이자 그들의 추악한 만행을 잊지 않았다는 선언이다.

영화 '귀향'과 '아이 캔 스피크'의 공식 포스터. 사진=네이버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포스터나 제목 그 어디에도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위안부를 소재로 삼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영화가 시작되면 ‘억척 민원 왕 할머니와 구청 공무원의 효과적인 영어 과외’의 내용이 주를 이뤄 더욱이 예측할 수 없는 전개양상을 띤다. 1시간의 러닝타임이 지나서야 ‘옥분’의 감춰진 서사가 밝혀지며 그제야 비로소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때부터 영화는 위안부 피해 그 이후의 실황에 집중하며 도전하는 ‘옥분’을 그려낸다. 강하고 깐깐하지만, 마음 따뜻한 ‘옥분’의 삶과 영어를 배워야만 했던 이유들을 차근차근 풀어내며 지루하지 않은 반전의 연출을 선보인다.

이런 연출의 차이는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위안부 피해를 잊지 않은 인물을 배치해 그들의 현 상황을 스크린 밖 관객의 피부 깊숙이 달했다.

김현석 감독이 <아이 캔 스피크>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떠올린 사람이 배우 ‘나문희’였다고 한다. 영화의 실제 모델이었던 위안부 피해 여성 ‘이용수’ 할머니와 배우 나문희가 아주 유사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안경을 꼈다는 점과 아프신 분들의 병문안을 다닐 만큼 건강했다는 점, 강직한 성격까지 두 사람의 높은 일치율은 영화의 몰입도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제작발표회에서 김현석 감독은 ‘나문희 선생님이 안 하셨으면 이 영화 안 들어갔겠죠.’라며 나문희 배우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더불어 이제훈과 명품 조연 박철민, 염혜란까지 브라운관에서 감초로 활약한 배우 진은 영화를 흥행 가도로 이끌었다.

그에 반해 <귀향>의 배우 진은 우리에게 비교적 낯선 감이 있다. 아무것도 모른 체 위안소에 강제로 끌려가는 14살 정민을 연기한 배우 ‘강하나’는 재일교포 4세로 개봉 당시 큰 이슈가 되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군 또한 대부분이 재일교포였다. 이들이 <귀향>에 출연한 게 알려지게 되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기꺼이 영화에 출연했다. 거의 모든 배우가 재능기부에 가까운 출연으로 마음을 모았다. 당시 영화를 볼 때 눈치채지 못했던 하나의 아이러니한 사실은 두 편의 영화 모두 배우 ‘손숙’이 출연한다는 점이다. 특히 ‘손숙’은 천 원 한 장 받지 않고 <귀향>에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귀향>에서 ‘은경’(최리)의 씻김굿 연기는 신비하고 몽환적이다. 어린‘정민’의 혼이 들어와서 ‘영희’와 그간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말하는 장면은 괜스레 소름이 돋는다. 무속신앙의 씻김굿이라는 삶에서 접하기 어려운 부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준 새로운 연기였다.

귀향 스틸이미지 - 영화 여주인공 무녀 '은경'(최리 분). 사진=네이버영화
'귀향' 스틸이미지 - 영화 여주인공 무녀 '은경'(최리 분). 사진=네이버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수준급 영어 실력으로 눈길을 끄는 이제훈은 촬영 기간 내내 수험생처럼 영단어와 문장들을 달달 외우고 스스로를 영어 능력자라 믿으며 연기에 임했다고 한다. 그 결과 바르고 스마트한 공무원 ‘박민재’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나문희와 동고동락한 시장 사람 중 가장 친했던 슈퍼 주인 염혜란의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먼저 간 친구의 뒤를 이어 미 하원 청문회에 나문희가 참석한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고 온 시장 사람들도 알게 된다. 그 후 염혜란은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에 나문희를 피하지만 나문희는 자신의 과거 때문에 염혜란이 자신을 피한다고 생각한다. 이 둘이 오해를 푸는 장면에서 비록 피를 나눈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관계를 맺고 살아온 이들 사이에 형성된 마음의 고백이 가슴을 울린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배려하다 생긴 오해로 눈물의 화해를 하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패밀리즘적 감동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나서지 못하고 숨어있는 마음을 위로한다.

아이 캔 스피크 스틸이미지. 사진=네이버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이미지. 사진=네이버영화

<귀향>에서 처녀들이 냇가에 앉아 빨래를 하는 장면이 있다. 냇가에 다 같이 둘러앉아 햇볕도 쬐고 그간 하지 못했던 서로의 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눈다. 그때 누군가 노동요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가시리’다. 영화를 지배하던 우울함과 속앓이에서 벗어나 가장 평화롭고 안정된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울컥 눈물이 난다. 그 어린 처녀들이 겪고 있는 충격적인 일들과 씻을 수 없는 상처들이 흘러가는 냇물에, 지나가는 바람에 사라지길 바랐다.

<아이 캔 스피크>를 아우르는 음악은 딱히 없다. 간신히 하나 찾자면 ‘민재’의 아재 개그에서 비롯된 노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다. 슈퍼 앞 마루에 앉아 민재가 말한다. “서면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가로수 그늘 아래 있어요.” 실소도 나오지 않는 아재 개그를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이 겨우겨우 살려낸다. 이 영화가 분명한 코믹영화임을 확인시켜주는 부분이었다.

‘귀향’의 사전적인 의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의미한다. 하지만 영화 <귀향>은 歸(돌아올 귀)자가 아닌 鬼(귀신 귀)자를 사용하는데 이는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타향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이 돌아온다는 뜻을 담았기 때문이다. 하여 어린‘정민’이 어린‘영희’에게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하는 부분이 이 영화의 상징적인 대사라고 생각한다. 조정래 감독은 2002년 나눔의 집에 봉사를 갔을 때 故 강일출 할머님이 그리신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영화 <귀향>을 제작하기로 했다고 한다. 처녀들을 스트레스와 분풀이의 대상으로 다루다가 병들거나 더는 쓸모없게 되면 데리고 가서 태웠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귀향>의 시발점이자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일본의 만행을 여실히 들어내는 이 장면이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옥분’이 영어를 해야만 했던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미 하원 연설장에서 “Yes. I can speak.”(증언하겠습니다)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알리겠다. 말하겠다.’라는 강인함이 느껴져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옥분의 연설 중 "This must be remembered"(꼭 기억해주세요)에서 내비친 것처럼 <아이 캔 스피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기억에 대한 중요성이다. 다시 반복돼선 안 될 아프고 슬픈 역사를 절대 잊지 말길 강조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두 작품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이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초점이라고 생각한다.

<귀향>은 어린 소녀들이 강제로 끌려가 겪게 되는 모든 과정과 그 후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초점을 맞췄다면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에 맞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위안부 피해 여성의 사후 노력에 집중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일본군 위안부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임을 일깨우며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사실을 알리고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사점을 공유한다. 두 작품을 비교해 살펴본 결과 관객의 수치상으론 <귀향>이 더욱 성공적인 작품일 수는 있으나 무거운 주제를 현대적이고 대중적으로 보다 쉽게 해석한 <아이 캔 스피크>가 더 나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내가 이 역사에 대해 틀리게 말할까 두려워 자꾸 숨게 되었던 것이 위안부 문제였다. 하지만 두 영화를 통해 당당하게 맞서 계속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안부 피해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귀향>을 그후 사과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실황을 알고싶다면 <아이 캔 스피크>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2020년 12월 위안부 피해 생존자 수는 16명에 불과하다. 두 편의 영화를 모두 감상한 후 간절한 마음으로 사과를 기다리고 있을 이들의 마음에 동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윤소정 대학생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