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배우다] 언론의 서로 다른 목소리
[뉴스를 배우다] 언론의 서로 다른 목소리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1.01.1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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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는 중앙과 두둔하는 경향

[뉴스를 배우다]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커뮤니케이션 개론 수강생들이 수업을 통해 언론의 정파성에 대해 확인한 뒤 하나의 주제를 스스로 정해 보도 차이를 비교/분석하며 느낀 점을 남긴 글입니다. [편집자말]

처음에는 언론의 정파성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저 정파성이 짙은 뉴스를 안보면 그만이고 중립적인 뉴스들만 찾아서 봐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수업에서 배운 언론의 정파성은 이미 여러 많은 언론들이 행하고 있기에 배척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잘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교분석 활동을 하면서 확인한 언론의 정파성은 다양했다. 기사의 헤드라인이나 키워드, 그리고 빈도수나 전체적인 내용에서 어떤 경향을 띄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각기 다른 입장으로 해당 사건을 다르게 구성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보다 폭넓게 그리고 심층적으로 알아갈 수 있었다.

이번 ‘언론의 정파성 비교분석’ 활동에서의 주제는 9월에 일어난 ‘북한의 공무원 피살사건’으로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는지 조사했다. 이 사건은 지난 9월 21일 낮 서해상 소연평도 남쪽 1.2마일 해상위에서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A씨가 갑작스럽게 실종돼 그 다음날 오후 22일 3시 30분에 북한군에 의해 발견되어 밤 9시 40분경 사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살당한 후 밤 11시경에서야 사건경위가 국방장관에게 보도되고 23일 밤 10시 50분에 우리나라의 언론매체에서 첫 보도가 되어 전 국민의 분노와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이후, 북한의 연관성 없는 사과, 희생자의 월북 탈출 가능성 의문, 유가족들의 반론 등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고 이런 사건들을 각 언론사별로 어떻게 보도,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과연 사건의 정황을 얼마나 드러낼 것인가?

우선 첫 번째로 두 언론사 간의 전체 보도량 차이/날짜 보도량으로 ‘북한의 공무원 피살사건’에 대해 중앙일보가 경향신문보다 약 5배 정도 더 많은 기사들을 썼다. 이 보도량 차이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해 성향이 다른 두 언론사가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정부의 상황, ‘정부의 조치가 관련되어 있는 사건의 정황을 얼마나 드러낼 것인가’에 대해서도 경향신문은 소극적이게 중앙일보는 보다 적극적으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상반된 헤드라인, 경향의 지켜야 할 것과 중앙의 지키지 않아도 될 것

다음은 이 사건에 대해 보도된 기사들 중에서 ‘헤드라인’에 대해 초점을 맞춰보았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9월 21일, 하지만 이미 피해자가 죽은 지 한참 후인 22일 밤에서야 그에 관련된 사건이 우리나라에 보고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조치가 미흡했다는 점은 지금까지도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은 국민들에게 비판받는 정부의 대처를 중심으로 기사를 여럿 냈다. 하지만 헤드라인에서의 단어선택은 확연히 달랐다.

우선 중앙일보에서는 ‘깜깜이 대응’, ‘석연찮다’ 등 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단어를 썼다. 하지만 경향신문에서는 야당이 여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야권 잠룡들’, ‘일제히 비판’ 이라는 한눈에도 특정 정당(보수)들이 보기에 불편한 단어를 헤드라인에 배치했다.

이처럼 두 언론사들은 해당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긴 했지만 경향은 ‘그럼에도 지켜야 할 것’을 중시했고 중앙은 정부의 조치에 관해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고 여겨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헤드라인을 통해 표명했다.

그리고 이어진 ‘북한 사과’에서도 상반된 헤드라인을 보였다. 이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보도됨으로써 경향신문은 북한의 사과가 진실된 것이며, ‘김정은 위원장은 이 사건을 사전에 알고 있지 않았다’라는 점을 헤드라인으로 부각시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중앙일보에서는 ‘사과가 더 절망적’ 라고 표현해 ‘다른 속셈이 있을 테니 그대로 믿지 말아야 한다’ 와 같이 의심이 담긴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음으로 희생자의 아들이 쓴 편지를 토대로 쓴 기사로, 내용은 비슷하나, 표현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우선 중앙일보는 헤드라인에 ‘분노’라는 단어를 써 아들의 격해진 감정, 분노와 안타까움의 감정을 부각하여 드러냈다. 하지만 경향신문에서는 ‘잃은 마음 이해’라고 표하며 아들의 분노를 나타내면서도 이를 위로하기 위한 대통령의 안타까운 감정을 덧붙였다.

따라서 헤드라인에 배치된 대통령의 위로에 대한 언급 유무와 ‘분노’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를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큰 차이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월북 가능성’과 ‘북한 사과’에 대해 중앙은 의심했고 경향은 확정했다

이 사건의 정황 중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 피살 공무원 월북’은 아직까지의견이 많이 갈리고 있기 때문에 이에 관련된 두 언론사의 상반된 입장을 기사를 통해 알아보았다. 먼저 중앙일보의 ‘"월북 가능성 없다" 동료 진술 듣고도···해경 "월북 맞다" 발표’ 기사에서는 동료 선원들과 가족들이 월북 가능성을 부정하는 의견을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경들은 의견조사 중에도 ‘월북’이라고 단정 지어 사실과 다른 잘못된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하지만 경향신문의 ‘민주당 “월북 시도, ‘사실’로···시신훼손은 좀 더 확인해야”‘ 라는 기사에서는 민주당 ‘서해상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공동조사·재발방지 특위’에서 구명조끼, 부유물 등만을 가지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내용을, 그리고 북한 측 함정에 희생자가 월북 의사를 나타낸 정황 등을 수집해 국방부가 ‘월북’으로 판단하였고 출처에 대해서는 국익과 국민 안전을 위해 보호되어야해 밝힐 수 없다는 내용이 나왔다. 이렇게 희생자의 ‘월북 가능성’에 대해 중앙일보는 ‘의심’을 경향 신문은 ‘확정’을 짓는 서로 다른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이뤄진 ‘북한 사과’에 대한 두 언론사들의 다른 관점과 상반된 내용이다. 경향신문의 ‘이인영 “(북이) 신속하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두번씩 사용한 적은 없었다”’ 라는 기사에서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와 관련해 미안하다는 표현을 두 번씩이나 사용하면서 신속하게 북의 입장을 발표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중앙일보의 ‘주호영 "시신 소각은 안했다? 김정은 진정성 없는 사과다"’라는 기사에서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는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을 계산한 것이며 사실관계를 왜곡하였고 무참히 살해, 소각한 것으로 봐서는 ‘진정성 없는 사과’라고 평가하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경향신문은 그만큼 북한이 이번 사건을 반성하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가 진심이라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으며 중앙일보는 그런 북한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으며 보여주기 식이라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용은 비슷했으나 어감은 달랐다

지난 10월 21일 희생자의 친형 이래진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을 가졌다. 이 면담에서 이래진씨는 중국 당국과의 협조, 북한에 대한 강력한 인권 규탄과 결의안 참여를 외교부에 요청하였으며 이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최대한 협조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 외교부가 사안들을 검토해볼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긴 했지만, 정부가 이 사건과 관련된 국제적 공론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들이 많았다.

그 이유로는 정부가 지난해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빠졌으며, 지난 13일 결의안 초안 작성을 위해 주요 공동제안국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첫 번째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정부가 지나치게 ‘북한 눈치보기’를 하면서 인권과 관련해 다소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경향신문의 ‘강경화, 피살 공무원 형 만나 "최대한 협조하겠다"’ 기사와 중앙일보의 ‘강경화 만난 北피살 공무원 친형 "북한 강력 규탄 해달라"’라는 기사에서 모두 다뤄진 내용이었다.

하지만 내용 측면에서는 공통된 부분이었지만 속의 어감은 미묘하게 달랐다. 경향신문은 위에서 언급했던 내용만을 집어넣은 반면, 중앙일보는 이래진씨가 이 면담에서 불편하게 여겼던 점들을 포함시켰다. 예를 들어 “이씨는 강 장관이 이번 사건 이후 처음 만나는 정부 고위 관료라는 점을 거론하면서 정부에 섭섭한 마음도 드러냈다” “동생과 같은 젊은이들, 공무원들에 유사한 사건이나 사고가 생겼을 때 이런 식으로 할 건지 정부에 묻고 싶다” “그리고 숨진 공무원 이씨의 '월북 시도'를 발표한 국방부에 대해 한 국민을 매도하고 공무원의 인격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등등 경향신문하고는 달리 면담에서 느낀 서운했고 불편했던 감정들을 드러내었다.

이처럼 본질적인 내용은 중앙과 경향 모두 ‘희생자 가족과의 면담’과 ‘북한 인권에 대해서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같았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핵심 포인트를 ‘면담’으로 중앙일보는 핵심을 ‘희생자 가족의 울분’으로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같은 면담 내용, 우려를 집어넣었는데도 피해자의 비판적 입장 추가 유무에 따라 겉은 같지만 속은 확연히 다른 부분들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중앙은 부정적으로 판단하려는 어감을, 경향은 최대한 좋게 해결하려는 어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비판하는 중앙, 두둔하는 경향

위에서 조사했던 것들을 토대로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에 대한 흐름을 전반적으로 알아보았다. 우선 키워드를 토대로 두 언론사들의 기사건수를 비교해본 결과 역시나 중앙일보가 경향신문보다 월등하게 많았다. 그리고 제일 첫 번째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날짜별 총 보도 건수도 중앙일보가 더 많이 나타났다. 이를 통해 정부의 미흡한 대처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중앙일보가 더 많이 보도하려하고 경향신문은 보다 더 적게 보도하려 했음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또한 헤드라인에서도 서로를 가리키는 특정 단어를 넣음으로써 중앙일보는 ‘보수’를 경향신문은 ‘진보’를 추구한단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이에 경향은 정부가 주장한 것들을 100%는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고 중앙은 이들을 의심하며 비판하고 있다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물론 사건에 대한 두 언론사간의 중심내용은 같을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터뷰, 의견을 포함하느냐 마냐에 따라서 언론사들이 맞춘 초점은 달랐다. ‘협력’과 ‘불편함’ 사이 경향신문은 ‘정부와의 협력’을 부각해서 드러내고 있었으며 중앙일보는 ‘협력 가운데 잘못된 대처’를 강조하고 있었다.

기사 길이에서도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대체적으로 중앙일보가 경향신문보다 길이가 더 길었으며 인터뷰나 특정 정당의 의견 같은 형식들도 보다 더 많이 들어가 있어 ‘길이’에 관해서도 중앙일보는 경향신문보다 사건에 관해 더 구체적으로 보도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경향신문과 중앙일보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기사들이 특정 정당을 겨냥하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배치하며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아닌 사실 그대로를 보도해 정부의 입장과 그에 반대되는 입장을 골고루 넣은 기사들도 있었다. 그래서 언론사들은 항상 정파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부각하는 면’이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언론의 정파성을 받아들이는 우리들

정파성이 우리나라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이 보는 관점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의 가치관, 생각들이 다르듯, 어떤 사건/정당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관점이 통일될 수는 없다. 이렇듯 상황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이 대립되어 충돌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알리려는 언론의 정파성은 계속해서 남아있을 것 같다.

필자가 정파성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이유는 그 주제에 대하여 잘 몰라 그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정치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정파성이 짙은 기사들이나 뉴스들이 과연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활동을 통해서 우리들이 각 언론사들이 보도하는 기사들에 대해 조금의 관심만 가진다면 흥미로운 관점으로 ‘언론의 정파성’을 볼 수 있다는 점과 언론의 정파성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스스로 사회를 넓은 시야로 보기 위해선 다양한 생각들이 필요하다. 그 생각들을 배우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언론의 정파성은 우리들에게 필요할 수 있다. 따라서 정파성이 있는 기사여도 무조건 나쁜 기사는 아니며,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우리들의 안목’이다. 우선 해당사건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각 언론사별의 입장을 배척하고 피하기보다는 많이 읽고 서로 비교해 본다면 각 정당에 대한 입장들을 이해할 수 있으며 사건을 객관적, 능동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언론의 정파성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역할에 의해서 해당 언론사의 입장만을 따라갈 것인지, 중립을 지켜낼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뉴스가 변하듯 독자들도 변화해야 하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스스로 비판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비교해야한다. 그것 바로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필요한 독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수진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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