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나] 삶에 부딪혀 볼 용기 주는 영화
[미디어와 나] 삶에 부딪혀 볼 용기 주는 영화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0.12.2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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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The Master)

[미디어와 나]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커뮤니케이션 개론 수강생들이 수업을 통해 1. 나와 미디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디어 영역의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추천하는 글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마스터>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은 톱스타 배우 이병헌, 강동원 등이 나오는 범죄오락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이 영화는 스타마케팅과 더불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과 맞물린 주제에 힘입어 국내에서 714만 명의 관객 수를 끌어 모은 대히트 작품이기도 하다. 이 한국영화 보다 3년 전에 개봉했지만 고작 3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여 국내에선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마스터>(이하 <The Master>)'가 있다.

비록 이 영화가 국내에선 흥행에 실패했으나 내가 애용하는 '왓챠' 앱에서 이 작품의 예상별점이 5점 만점에 4.8점이라고 추천해줬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영화평론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이동진 평론가가 별점 5점을 줬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고로 다른 일을 제쳐두고 감상하게 된 이 영화는 한국영화 <마스터>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 영화 마스터(The Master)의 공식포스터 ⓒ (주)누리픽쳐스
▲ 영화 마스터(The Master)의 공식포스터 ⓒ (주)누리픽쳐스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 자체는 특이하지 않다. 퇴역 군인의 신분으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곳을 방황하는 '프레디'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술에 취해 타게 된 유람선엔 새로운 만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신흥 종교 집단 '코즈'의 교주 랭케스터를 만난 뒤 기나긴 방황을 끝낼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부풀어 랭케스터를 마스터로 모시게 된다. < The Master >는 이 두 남자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신경전을 다루는 드라마다. 이렇듯 신선하거나 특별해 보이지 않는 줄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자신만의 매력으로 관객을 영화 속에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우선, 이 영화는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음을 알린다. <The Master>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게 된다면 다른 배우의 연기는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다. 조커 연기로 202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는 호아킨 피닉스는 프레디 역을 맡아 조커연기에 비견되는 메소드 연기를 펼친다. 예를 들어, 프레디가 랭케스터와의 갈등으로 인해 설전을 벌이다가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변기를 박살내는 명장면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실력을 지체 없이 보여준다. 날카로운 변기 조각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분노한 모습은 그가 프레디라는 역에 얼마나 몰입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변기를 박살내는 행동은 호아킨 피닉스가 대본에도 없는 애드리브를 한 것으로 가히 신들린 연기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프레디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고 한다. 이렇듯 예술의 경지에 오른 배우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많은 관객들은 최근 한국영화들을 감상하다보면 기시감을 느낄 때가 많을 것이다. 여러 영화들만 봐도 내용은 다르지만 맥락과 구성은 명백히 비슷해 보인다. 범죄 장르에 화려한 액션과 적당한 유머를 섞은 영화들이 흥행몰이를 하니 비슷한 영화들을 반복해서 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과 주제가 일관되고 권선징악을 내세우는 영화들의 반복은 관객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다.

이렇듯 기시감을 주는 영화들에 신물이 난 관객이라면 < The Master >는 한줄기의 빛과 같은 영화다. 이 영화는 주제조차 명확하지 않고 뚜렷한 선악구도조차 없다. 단지 결핍된 존재인 프레디가 마스터를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지켜볼 뿐이다, 이런 영화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오락액션 영화처럼 눈이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던 명장면 같이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프레디와 랭케스터의 신경전을 목격한다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둘 사이의 관계 속에서 누구나 서스펜스와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 The Master >는 진짜 우리의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영화들과 결을 달리한다. 현대인들은 프레디와 같이 자신의 마스터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삶은 목적이나 주제가 뚜렷한 영화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불명확하고,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고군분투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동화 시대와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시대가 겹치며 현대인들은 거대한 불확실성에 놓여 방황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가 길 잃은 청년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진 못한다. 삶이란 정해진 답이 없는 미지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프레디라는 인물이 끈덕지게 마스터를 갈구하는 과정을 관객이 목격하도록 유도한다. 인생에 대해 고뇌하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됨으로써 관객은 자연스레 그에게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관객은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그를 보며 자신뿐만 아니라 누구나 삶에 대한 불안에 놓여있음을 깨닫고 위로받게 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영화는 삶의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프레디를 통해 관객 또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직시하도록 독려하기까지 한다.

The Master의 스틸이미지. 사진=다음영화
The Master의 스틸이미지. 사진=다음영화

현대사회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삶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은 불안과 우울로 점쳐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또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미디어인 영화는 현대인의 고단한 삶에 대한 도피처로써의 기능만이 더욱 강화돼가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안락한 도피처가 아닌 삶에 대해 부딪혀 볼 용기이다.

<The Master>의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은 주류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영화를 개척하여 관객에게 삶에 대해 끈질기게 탐구하도록 이끈다. 즉, 그의 철학이 담긴 이 영화는 현대인이 외면하고 있던 마음속 작은 불씨를 뜨겁게 타오르게 함으로써 삶을 주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영화인 것이다. 비록 이 영화가 한국 관객에게 알려져 있진 않지만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찾아보길 권하는 이유이다.

최시온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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