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필품 구매, 시각장애인은 어떡하죠?
생필품 구매, 시각장애인은 어떡하죠?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0.12.24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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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점자 표시는 ‘음료’ ‘탄산’ 정도뿐…에너지드링크 마시려다 맥주 집기도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길을 걸어가야 하고 또 생활필수품도 사서 쓰게 된다.

국내 시각장애인은 혼자 길은 걸을 수 있지만 물건을 사기는 그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국토교통부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지침)’ 등을 통해 길에는 시각장애인 안내용 점자블록이 설치되도록 하는 규정이 있고 또, 안내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기초 생활용품에는 안내용 점자가 표기된 제품이 거의 없는 데다, 안내견이 이를 도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A(18)양은 “학생이라 편의점에서 컵라면, 삼각 김밥 같은 것을 많이 사서 먹는데 이들 제품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표시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쉽게 말해 맛을 랜덤으로 먹게 된다”고 자신의 일상을 전했다.

그녀에 따르면 실제로 편의점에 점자가 표시되어 있는 제품은 음료 캔밖에 없다. 이마저도 그냥 ‘음료’ 또는 ‘탄산’만 표기되어 있어 시각장애인들은 정확히 어떤 종류의 음료인지도 모르고 캔을 집어야 한다. 용기를 내 카운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 음료수 캔에 상품 브랜드가 아닌 "음료"라는 딘어가 점자로 표시돼 있다.
한 음료수 캔에 상품 브랜드가 아닌 "음료"라는 딘어가 점자로 표시돼 있다.

때문에, 모양이 비슷하면 그냥 추측으로 물건을 사는 경우가 있는데 물건을 잘못 가져와 민망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려고 집어들고 카운터로 가져 간 것이 모양이 비슷한 맥주 캔일 때가 그 한 예이다. 상품 브랜드 뿐만 아니라 가격표에도 점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어려움을 더한다. 이처럼 비장애인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상의 장벽이 시각장애인의 일상적 소비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중증시각장애인 B(55)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B씨는 시각장애 3급으로, 아예 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시야가 흐릿하게만 보인다. 가까이 가서야 물체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 B씨는 대형마트에 가 쇼핑을 할 때 “뭐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비장애인은 안내 팻말을 보고 찾아갈 수 있지만, 가까이 가야 보이는 B씨에게 원하는 물건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B씨는 “원하는 물건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다가 도저히 안 되면 점원에게 도움을 청한다”며, “상품에 점자 표기는 물론이고, 매장 입구 같은 곳에 제품의 위치를 설명해 주는 안내판이나 도우미가 있으면 쇼핑하기 한결 수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의 독자적 쇼핑을 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다. 바로 무인결제기기인 키오스크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찾아온 언택트 시대에 키오스크는 접촉을 줄이고 싶은 비장애인들을 위한 대안책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 신종 소비문화의 상징물은 거의 대부분 음성지원이 되지 않아 시각장애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시각장애인 C(34)씨는 “은행의 ATM기는 이어폰이나마 꽂을 수 있게 돼 있지만 키오스크에선 터치 자체가 난관이라 시각장애인들은 아마 거의 이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에 대해, 강원도 시각장애인연합회 김정진씨는 “장애인 편의시설 관련 법안이나 규정에 생필품이나 이를 판매하는 마트나 제품에 관한 법률은 없다”며 “그런 법안이 만들어지려면 아주 본질적인 것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회와 대형마트에 안내견 출입 문제를 놓고 사회적 논란이 일면서 시각장애인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 모두의 편안한 일상을 고민하는 사회라면 시각장애인의 소비활동을 배려하는 시스템을 고려해야 할 때가 아닐까?

황석지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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