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미디어와 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 한림미디어랩 The H
  • 승인 2020.12.10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죽음에 관하여’를 읽고

[미디어와 나]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커뮤니케이션 개론 수강생들이 수업을 통해 1. 나와 미디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디어 영역의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추천하는 글입니다. [편집자말]

내 하루는 항상 웹툰으로 마무리된다. 정각이 될 쯤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장르의 웹툰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 하루도 지나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웹툰이라는 미디어는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웹툰을 본격적으로 즐겨 보기 시작했던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스마트폰 보급이 급격히 확대되던 당시 내게도 첫 스마트폰이 생겼었다. 이를 통해 미디어 컨텐츠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그 중 내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웹툰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책을 포함한 여러 책들을 좋아했던 내가 웹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거다. 웹툰이 가진 강점들은 찰나의 관심을 오랜 애정으로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많은 돈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다는 점,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만 있다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는 점, 그림체와 작품 스토리를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 등 간편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큰 만족도를 준다는 사실이 나를 매니아로 만든 것 같다. 컷의 전환 속도가 독자의 손가락에 달려 있어서 여운을 충분히 느끼고 넘어갈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특히 깨달음과 여운을 남기는 웹툰을 좋아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네이버에서는 종종 완결한 웹툰에 bgm을 입혔다며 홍보를 하는데, 최근 정말 좋아했던 작품에 bgm이 붙었다는 사실을 듣고 다시 결제해서 보게 됐다. 작품 이름은 <죽음에 관하여>. 해당 작품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매 회차마다 다른 인물들이 등장해 다른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인물이라고 하기엔 어렵겠지만 고정적으로 나오는 인물은 ‘신’ 뿐이다. 신은 등장인물들을 환생의 문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은 보통 죽은 상태다. 신이 죽은자들을 인도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출간된 단행본의 표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회차는 ‘3.5화’와 ‘4화’다. 3.5화에는 노인 남성 한 명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남성은 호탕하고 시원한 인물로 본인이 죽은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좋은 아내를 만나 좋은 딸을 낳은 좋은 인생’이었다며 삶에 미련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해당 회차는 신이 노인 남성을 문 앞으로 데려가는 걸 끝으로 간단하게 끝난다. 4화에는 노인 여성 한 명이 등장한다. 노인 여성은 ‘남편을 먼저 보내고 12년을 홀로 보낸 불행한 인생’이었다고 하다가도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어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말한다. 신을 따라 도착한 문 앞에서는 남편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주저앉고 만다.

“할멈. 안 본 사이에 쭈글이가 되었구만?”

주저앉은 노인 여성의 앞으로 3.5화의 노인 남성이 등장한다. 남성은 환생을 미룬 채 12년 동안 무(無)의 공간에서 아내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렇게 4화는 남성이 여성을 업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거니는 것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죽음에 관하여>의 작화는 비교적 단조로운 편이다. 하얀 바탕에 검은 색체의 그림들. 많지 않은 컷들과 짧은 회차의 길이. 그 자체로 독자들에게 많은 감정을 선사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이다. 4화에서 이뤄진 노인 부부의 재회도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부둥켜 안고 우는 장면 하나 없이 ‘딸아인 많이 컸소?’, ‘벌써 어른이라우’ 등의 간단한 대화만 이어질 뿐이다. 내가 미디어를 접할 때 불편함을 느끼는 장면 중 하나는 미디어 사용자들에게 감정 포인트를 대놓고 알려주는 장면이다. 과도하게 감정을 요구받은 사용자들은 이에 응하면서도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당 작품을 보는 독자들은 오롯이 본인만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숙연해질지, 눈물을 흘릴지 결정하는 것은 모두 독자에게 달려있다.

또한 죽음의 변두리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을 구체화하고 일상적인 상황처럼 느끼게 해 현실적인 깨달음을 남긴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가볍게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죽어본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독자들은 모든 등장인물들의 죽음에 공감하게 된다. 작품의 전개 방식도 꽤나 재미있다. 독자로 하여금 내용에 혼돈을 주다가 마지막 컷에서 깨달음을 주는 방식은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거나 방향성을 확립하고 싶은 사람들, 거창한 이유 없이 간단히 웹툰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단순 재미로 즐기고 넘어가기에도 좋고 각자만의 깨달음을 얻어 가기에도 좋다. 특정 가르침을 전달해주려 애쓰지 않고 독자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작품이어서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을 듯하다. 해당 작품을 통해 독자들 개개인의 삶에서 각자만의 성찰을 했으면 한다.

<죽음에 관하여>는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제시해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삶의 끝에서 후회 한 점 안 남길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막연해지면서도 동시에 여러 결심이 오간다. 나중에 죽음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며 마지막 장을 닫는다.

동혜연 대학생 기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