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간 데 없고 불좌대만 남아...
부처님은 간 데 없고 불좌대만 남아...
  • 황병준 기자
  • 승인 2015.06.05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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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역사탐방] 천태종 중심 사찰터, 원주 거돈사지

대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절 하면 보통 경주의 황룡사지, 불국사 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원주시에도 당대에 가장 융성했다고 하는 고찰이 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천태종이 만들어진 후 천태종의 중심사찰이 되었던,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타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절, 거돈사이다.

문막IC를 빠져나와 원주시의 끝자락인 부론면으로 천천히 가다보면 모내기를 막 끝낸 논들이 펼쳐진다. 이들을 풍경삼아 20여분 더 가다보면 거돈사지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보이고 그 위로 석탑의 윗부분이 살짝 눈에 띈다.

몇 되지 않는 돌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앞에 3층 석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석탑은 이끼 하나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주변의 풀과 나무들도 잘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다. 자발적으로 이 곳을 관리하는 지역 주민들의 정성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석탑을 중심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부지의 방대함이 지금은 사라진 사찰의 규모를 가늠케 한다. 그러나 여기저기 놓여진 돌들과 구조물이 있었던 흔적들은 쓸쓸함을 불러오는 것도 사실이다.

석탑 뒤로는 조금은 투박하게 생긴 부처님을 모셨던 불좌대가 있고 주위의 주춧돌이 놓여 있어 사찰 내 가장 큰 법당인 대웅전이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불좌대 곳곳에 불에 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임진왜란 때 외세의 야만성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옆으로 30m정도 더 걸어가면 외로이 서있는 비석이 하나 보인다. 이 비석은 원공국사승묘탑비로 고려 광종 때의 유명한 승려였던 원공 국사의 생전행적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거북모양의 비석받침대와 용을 형상화한 지붕의 모습은 꽤나 화려해보이지만 그 때문에 더욱 외로워 보인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는 당시 사학의 대가라고 불렸던 최충이 지었고 글씨는 구양순체로 당대의 명필이었던 김거웅이 써 넣었다. 원래 비석근처에 묘탑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서울에 있는 한 일본인의 집으로 옮겨졌다가 해방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됐다.

절터에서 조금 내려오면 오래된 폐교가 있고 운동장 안에 사찰의 깃대를 고정하는 7m가량 길이의 당간지주가 홀로 눕혀져있다. 이 사찰의 깃대를 고정하는 당간지주에는 하나의 전설이 내려져온다. 돌을 운반하던 남매 장사 중 남동생이 죽게 되어 결국 이 당간지주는 거돈사지로 올라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고려시대 가장 융성했던 사찰중 하나였던 거돈사의 옛 절터는 여느 폐사지와 다를 바 없이 공허함과 적막감이 가득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넓게 흩어져있는 사찰의 흔적들에서 웅장했던 고사찰의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고,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잠깐의 고독함과 적막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한 번쯤 방문해 봄직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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